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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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켄공업(樹硏工業)은 초정밀·초소형 플라스틱 부품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이다. 2002년 무게 100만분의 1g, 직경 0.149㎜ 초미세 플라스틱 톱니바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톱니바퀴 개발을 이끈 사람은 공업고 출신이다. 15년 전 입사 면접 당시 금 귀고리에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그런데도 주켄공업은 받아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착 순서대로 합격시키는 ‘선착순 채용’이 주켄공업의 전통이다.

주켄공업을 창업한 사람은 마쓰우라 모토오(松浦元男)다. 선풍기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날려 승진자를 정했다는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 창업자만큼이나 ‘괴짜 경영인’이다. 주켄공업에는 정년도, 출근기록부도, 출장보고서도 없다. 엉뚱해 보이지만 나름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밴드 활동에서 배운 기본기

마쓰우라 창업자는 1935년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전쟁을 피해 옮겨 다니다 가족과 함께 아이치현 도요하시에 자리잡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서전 선착순 채용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다에서 “고등학교 3년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며 “책 한 권은 쓰고도 남을 만큼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낮엔 미장공으로, 밤에는 카바레 종업원으로 일했다. 인쇄공 시절엔 시간을 쪼개 오후 시간은 제빵사, 밤에는 댄스홀 연주단원으로 뛰었다. 학교는 밥먹듯이 빠졌다. 보통 학생보다 출석 일수가 3분의 1이 적었다. 유급을 면한 것은 담임 교사가 매년 교무회의에서 머리를 숙여가며 진급을 부탁한 덕분이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우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밤에 활동한 재즈 연주단원 생활은 큰 즐거움이 됐다. 그는 “청춘을 불사르던 시기였다”며 “밴드 생활은 매일 새로운 도전이었고 내 몸은 늘 에너지로 충만했다”고 했다. 아이치대 법경학부에 입학하고 나서도 밴드 생활은 이어졌다. 그때는 ‘도모토 야스히로와 비 플랫’이란 5중주단의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했다.

마쓰우라가 ‘기본의 중요성’을 익힌 것은 밴드에서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트롬본 연주자였던 도모토 야스히로는 죽어라 기본기 연습만 시켰다. 마쓰우라가 불만을 나타내자 이렇게 말했다. “기본이란 건 모두 그런 거라고. 마음가짐이나 정신으로는 기본을 익힐 수 없어. 기본이란 곧 자세야. 검도나 유도에 기본자세가 있듯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당대 유명 색소폰 연주자 요시야 준에게선 이런 말을 들었다. “인생은 얇은 종이를 쌓아올리는 것과 같아. 한 해 한 해 쉬지 않고 쌓아올린 두께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 음악 스승들의 가르침은 마쓰우라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주켄공업이 누구를 뽑든 장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도 기본기를 확실히 익히도록 한 과정에 있었다.

◆“5년 동안 정년까지 할 일 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 했다. 그는 자본금 1억엔 이하, 사원 300명 이하, 최첨단 소재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장을 하려면 이 정도 규모가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돌하게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사장이 될 거라고 말했다.

마쓰우라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5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정년까지 할 일을 5년 동안 다 했다”고 회고했다. 그곳에서 그는 수주 전표를 대화형 형식으로 바꿨다. 항목을 선택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바꿔 제조 오류를 없앴다. 셀로판지와 폴리에틸렌필름을 제조해 팔던 회사가 새롭게 염화비닐필름을 생산한다고 하자 사비를 털어 연구에 나섰다. 책을 닥치는 대로 구입하고 약품회사 기술부 사람들과 만나며 배웠다. 그는 “자기 일에 필요한 공부라면 자기 돈을 들여 하는 것은 밴드 연주자 시절의 습관”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연구팀보다 더 많이 알게 됐고, 염화비닐 사업을 주도한 것은 마쓰우라였다.

서른 살이던 1965년 마쓰우라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도요하시에서 주켄공업을 창업했다. 현금은 물론 땅, 집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회사를 차린다는 소식에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450만엔에 달하는 성형기를 30회 할부로 내라거나, 차입금 보증을 서겠다는 사람, 원재료를 3개월 후 결제 조건으로 제공하겠다는 업체 등이었다.

◆규칙을 정하지 않는 회사

주켄공업은 1973년 무게 1g의 정밀 톱니바퀴를 제작하면서 일약 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산업계의 트렌드가 ‘경박단소(輕薄短小: 가볍고 얇으며 짧고 작음)’ ‘에너지·자원절약’이었던 것과도 맞아떨어졌다. 1999년에는 10분의 1g, 2002년에는 100만분의 1g으로 기술이 발전했다. 카메라와 시계, 자동차 회사들에 정밀 모터를 공급했다. 지금은 나노 기술로 마이크로 렌즈나 마이크로 나사, 의료 부품 등의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주켄공업은 규칙을 정하지 않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마쓰우라는 “불필요한 규칙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출근기록부가 없다. 출퇴근도 자유다. 해외 출장을 가도 경비 정산, 보고서 작성 없이 전화와 이메일로 대신한다. 다른 기업과 거래할 때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구두 계약으로 한 뒤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마무리한다.

신기술 개발 계획서도 쓰지 않는다. 개발 책임자도 없다. 개발은 누구나 시간을 내서 틈틈이 하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주켄공업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발전시켜 나간다. 개발에 대한 부담도 없다. 비행기를 제작하려다 잠수함을 만들어도 상관 없다는 식이다. 기술 개발을 놀이처럼 한다.

주켄공업은 장인을 수없이 배출해냈다. 신입사원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나무라지 않는다. 묵묵히 지켜보면서 가르친다. 선착순 채용으로 외국인, 고졸, 폭주족, 노랑머리 등 누가 들어와도 입사 3년이 지나면 컴퓨터지원설계(CAD) 도사가 되고 초정밀 가공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주켄공업은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두 번의 경영 위기를 제외하면 창업 후 순조로운 성장을 이어왔다. 마쓰우라가 강조하는 것은 ‘급성장’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이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가격 경쟁을 하거나, 시장점유율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마쓰우라는 대기업의 요구에도 제품 종류를 늘리지 않았다. 종합이나 다각화와 거리를 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이것만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기업을 추구했다. 그는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독자적인 기술력뿐”이라며 “기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주켄공업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