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남미 좌파의 몰락
정치학자들은 중남미를 ‘정치학을 위한 박물관’으로 부른다. 1820년께 독립한 중남미 국가들은 200년간 그야말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온갖 정치 행태를 그려냈다. 이들 국가는 민족구성이나 경제발전 정도, 정치 엘리트층 분포 등이 확연하게 달랐다. 쿠데타도 잦았다. 온두라스는 1824년부터 1950년까지 126년간 무려 116번의 정변을 겪었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하다. 정치연구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불안정은 좌파 포퓰리즘을 부르는 요인이 됐다.

2차대전 후 이들 나라에서 좌파 포퓰리즘 바람은 식자층을 파고들었다. 각국이 미국에 막대한 기술지원과 경제원조를 요구했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을 교묘한 제국주의 정책을 펴는 국가로 간주했다. 남미의 경제상황이 선진국 경제에 종속됐으며, 낮은 발전의 원인은 자국 내 문제보다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종속이론도 이때 나왔다. ‘사회주의 혁명을 중남미 전역에 확산하는 게 목표’라는 체 게바라의 프로파간다는 중남미인들을 매혹시켰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 군부집권기에 이들 좌파는 분배 정책보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내걸면서 중도적 성격을 내세웠다. 대중의 안정 추구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전술이었다.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남미 대륙은 차츰 좌파 정권에 물들어갔다. 2003년 브라질의 룰라 정권에 이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에 좌파 정권이 탄생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자원 민족주의와 복지정책의 확대를 내걸었다.

원유를 팔아 생긴 자금을 복지비용으로 활용했다. 경제를 살리는 시장형 법제도는 정비되지 못했고 인프라 확충도 후퇴했다. 개혁이 늦어지면서 경제가 악화되자 민심은 최근들어서야 다시 우파로 돌아섰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12년간 이어진 좌파 페론주의를 물리치고 우파 마크리가 집권에 성공했고 페루도 우파 후보인 쿠친스키가 당선됐다. 베네수엘라 역시 지난해 말 총선에서 16년 만에 우파가 승리했다. 어제 브라질 의회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14년간 이어진 브라질 좌파정권의 붕괴요 중남미 좌파 체제의 몰락이다.

정작 주목되는 건 중국의 움직임이다. 그동안 중남미는 중국의 독무대였다.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등 많은 국가가 거액의 융자와 인프라 정비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과연 남미 정치에 계속 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