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역 인구재앙
올해처럼 더운 여름이면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콩나물시루 교실’이 생각난다. 좁은 교실에 적게는 8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나 되는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야 했으니 그야말로 시루 속 콩나물 신세였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앞부분에 속해 있는 필자는 늘어나는 인구를 대비하기 어려웠던 시대상을 그대로 몸으로 겪으며 성장해야 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고 한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 한국판이 일찌감치 나왔다면 사정이 나아졌을까. 얼마 전 국가 차원의 ‘장수 리스크’ 관리의 중요한 전제 요건인 인구추계모형의 오류를 지적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급속한 기대수명 증가의 함의’라는 보고서도 비슷한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인구추계는 사회복지를 포함한 국가재정지출계획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변수이기 때문에 보고서대로라면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재정에 심각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통계청이 즉각적으로 타당성 있는 반론을 내놓았지만 새삼 맬서스의 재앙이 떠올랐다.

맬서스가 인구론을 집필할 1800년 당시 유럽 인구는 1억9000만명이었지만 1900년에는 4억2000만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골목마다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 찼고 일자리를 못 구한 서민들과 어린이는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한편으로는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 추구에 대한 활발한 진보가 이뤄지고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의 학자로 태어난 맬서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한 예언은 ‘하위계층 사람들은 물질적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다’는 가정이었다. 맬서스는 그렇게 되면 약자인 빈민들이 우선 사망하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예방적 제어’를 하자고 주장했다. 맬서스의 예언을 정치가들은 빈민구제책이나 하층민을 위한 최저생계비를 넘는 임금인상 대책을 시행하는 것은 하층민 인구를 늘리기만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다자녀가구에 주던 보조금마저 중단하는 정책으로까지 이어졌다.

맬서스의 예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맬서스는 더욱 정교한 통계까지 동원해 우울한 예언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평생, 그리고 심지어는 사후에도 잘못된 예언에 대한 비판과 조롱에 시달렸다. 하지만 한 국가의 평균 수명은 KDI 보고서가 주장한 것처럼 인구추계모형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 통계적 추정치를 내놓더라도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국가의 사회안전망이나 의료제도 등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조건과 경제수준 등 고려할 요인이 많아서다. 지난 5년간 인구동향이 2010년 인구추계에서 한 예측에서 빗나간 것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보건사회 환경변화와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한국은 맬서스가 예언한 시대와 정반대인 ‘역(逆)인구 재앙’에 당면해 있다. 올 12월에 나올 2015년 센서스에 기초한 ‘장래인구 추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역시 수정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인구는 경제학적으로 생산 측면과 소비 측면에서 모두 중요하다. 인구가 증가하면 생산요소가 늘어 결국 부를 더 많이 생산하게 되지만, 소비 측면에서는 인구가 늘면 자원을 더 소비한다. 맬서스가 역사적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인구론을 쓴 의의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그 사실에서 나온 법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 있다.

지난주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對)국민 호소문까지 낭독하며 난임 지원 확대와 둘째 아이 장려, 총리급 컨트롤타워 신설 등 저출산 극복 대책을 시작한 것은 때늦은 단기 대책이긴 하지만 절실하다. 호소문 중 전국 초등학교의 22%에 달하는 1395개 학교가 올해 입학생이 10명 미만이라는 부분이 콩나물시루 세대인 필자에겐 확 다가왔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인구를 국가 부를 늘리는 기초 여건으로 보는 출산장려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