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1일 시작되면서 이화여대 사태 장기화로 인한 교내 구성원의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서 교수들이 수주한 연구과제에 대한 연구비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36일째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어 행정 처리를 하지 못해서다. 연구는 중단됐고, 연구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했다. 교수 교직원뿐 아니라 학생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본관 점거 36일째…이대 사태 '우려가 현실로', 직인 못찍어 수억원 연구과제 무산 위기
이화여대 약학대학의 A교수는 지난해 민간 기업에서 수주한 신약개발 연구 프로젝트의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면 갱신 계약 협약서에 산학협력단장 명의 도장을 찍지 못해 1년치 연구비인 약 1억원을 받지 못했다. 약학대의 B교수도 마찬가지 이유로 정부에서 새로 수주한 신약개발 관련 연구비 6억8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A교수는 “산학협력단장 명의의 직인이 학생이 점거 중인 본관 내 산학협력단 사무실에 있어 가져올 방법이 없다”며 “갱신 계약을 당초 7월 말에 끝냈어야 했는데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어 연구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사정을 얘기해도 소용 없었다. A교수는 지난달 초부터 여러 차례 직인 등을 가져올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협의해서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연구비가 막히자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통상 연구비에서 이들의 월급과 대학원 등록금 등이 나가기 때문이다. A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연구원이 8월 월급을 받지 못해 사비로 지급했다”며 “이달 다른 연구과제들도 줄줄이 갱신해야 해서 갈수록 상황이 나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B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외국인 박사후 과정 연구원 두 명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산학협력단은 공과대학 등 외부 연구과제를 많이 수행하는 다른 교수들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당시 산학협력단장은 직인과 중요 서류 등을 가져올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학생들에게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인감 등을 새로 만들어 쓰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 경우 이전에 계약한 문서들도 새로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학교 행정도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주 할 예정이던 법정 소방시설 점검은 본관에서는 하지 못했다. 산학협력단을 비롯해 총무팀 학적팀 수업지원팀 등에서 일하는 교직원들은 대학 내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와 교육관 등 빈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져 행정업무를 땜방하고 있다.

학교 측과 농성 학생들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지난달 초 농성의 단초가 된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이 철회됐지만 학생들은 ‘총장 사퇴’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본관 근처에 천막을 마련하는 등 학생들과 소통할 의지를 내비쳤지만 실제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