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독립된 전문가 그룹에 직원들의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된다. 퇴직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연금 가입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정기예금에 묶인 퇴직연금 자금이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투자 상품으로 움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적금에 묶인 중소기업 퇴직연금 코스피로 '대이동'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이원화

고용노동부는 31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이 개정되면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 아래 계약형 또는 기금형 퇴직연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예상 시행 시점은 내년 상반기다. 쟁점 법안이 아닌 만큼 연내에 국회 통과가 가능하다는 게 고용부 측 설명이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만 운영됐다. 사용자가 퇴직연금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사측의 연금 실무자들은 정기예금과 같은 원금보장형 상품에 대부분의 연금 재원을 투자했다. 손실이 나면 문책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회사에 운용 책임이 있는 확정급여형(DB형) 상품 중 원금보장형의 비중이 96.1%에 달하는 배경이다. 이 같은 투자 패턴은 퇴직연금의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직장인들이 가입한 퇴직연금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2.5%의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9.5%의 수익을 낸 호주 퇴직연금의 4분의 1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연금 가입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연금 운용과 관련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금융회사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17.3%로 300인 이상 대기업(84.4%)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새로 도입되는 기금형은 사용자와 금융회사 사이에 수탁법인이 들어간다. 직원들의 연금 운용 방향을 결정하고 금융회사를 선정하는 게 수탁법인의 역할이다. 노사 대표와 외부 연금운용 전문가 등이 수탁법인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이 한층 손쉬워지고 원금 비보장형 상품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내 최대 40조 이동

시장에선 기금형 퇴직연금이 금융투자 상품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탁법인이 고객사를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것이란 설명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활성화된 호주는 퇴직연금 투자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90% 이상이 원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5년 내로 30조~40조원의 새로운 자금이 은행 등을 빠져나와 금융투자상품 시장으로 밀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126조원에 달한다.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 사전에 사업자가 설계한 상품을 자동으로 고르는 ‘디폴트 옵션’을 활용하는 투자자가 많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송형석/백승현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