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의사 출신이라 의료소송만? 민·형사 사건이 절반이에요"
“의료지식은 의료소송뿐 아니라 민·형사와 가사소송에서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 출신 로스쿨 변호사 1호인 박철훈 법률사무소 한종 변호사(39·변호사시험 1회·사진)는 “의료 기록에는 현장 경험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행간’의 정보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3년간 공중보건의를 거친 그는 2007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환자와 의사 간 의료 분쟁을 여러 번 마주쳤다.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는 불가항력의 의료사고까지 문제 삼았다. 의사는 노력 여하에 따라 막을 수도 있는 사고까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며 발뺌했다.

지난해 법원이 접수한 의료소송은 1100건 이상. 환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10건 중 2~3건꼴로 적다. 환자가 병원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의료 전문지식이 없는 변호사가 법리적으로만 사건에 접근하면서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건까지 무리하게 수임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변호사는 늘어나는 의료소송에 비해 의료지식을 갖춘 변호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의료계를 떠나 법조계에서 의료지식을 무기 삼아 활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생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그에게 법조인의 길을 열어줬다. 주위에서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대형 병원의 안정적인 의사 직업을 왜 그만두려 하느냐” “변호사가 2만명을 넘어 힘들어진다더라” 등의 현실적 조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의료분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2008년 2월 병원을 나왔다. 1년여를 준비해 2009년 3월 서울대 로스쿨 1기로 합격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서 실무경험을 쌓고 나니 여기저기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의료소송 전문 로펌도 있었지만 민·형사, 가사 사건을 다루는 로펌의 러브콜도 받았다.

그는 지난해 3월 서울 서초동에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직접 모든 과정을 챙겨야 자신의 의료지식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의료소송 전문 로펌은 간호사가 검토한 기록을 토대로 변호사가 법리적 해석을 내놓기 때문에 ‘틈’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강제입원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정신질환이 없었음을 밝혀냈고, 알코올 중독이 문제가 된 가사 사건에서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등 의료지식을 다양한 사건 해결에 활용하고 있다.

그는 “개업 초기와 달리 의료지식이 필요한 민·형사 사건이 절반가량 된다”며 “공급이 없어 수요가 없던 법조 틈새시장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 마을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법률과 건강 이야기’라는 주제로 성동구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여자주인공이 변호사로, 남자주인공이 약사로 나오는 SBS 드라마 ‘애인있어요’의 자문도 맡았다.

그는 “법조계가 어렵다지만 전문지식을 갖춘 사회 경력자들이 로스쿨을 통해 법조계로 나온다면 블루오션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