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로 미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셀레스트 응.
장편소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로 미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셀레스트 응.
‘리디아는 부모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지어 부모가 요구하지 않을 때도 알았다. 매번 그 일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교환해야 하는 작은 거래 같았다. 그래서 여름마다 대수를 공부했고, 드레스를 입고 신입생 댄스파티에 갔고, 대학에서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여름 내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모두 말이다. 응,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면서.’

리디아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사는 순응적인 열여섯 살 여자아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고민해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기에 이런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간극이 너무 커서 아이를 파멸에 이르게 할 정도의 고통을 준다면, 그래도 별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딸 통한 '대리 성공' 집착…왕따 부모의 '잿빛 욕망'
미국의 주목받는 신예작가 셀레스트 응(사진)의 장편소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마시멜로)이 최근 국내 출간했다. 이 소설은 응이 2014년 발표한 데뷔작으로 미국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됐다. 허핑턴 포스트, 북리스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등에서 그해 ‘최고의 책’으로 뽑힐 만큼 호평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도서관협회 알렉스상, 매사추세츠 북어워드, 메디치 북클럽상, 아시안 퍼시픽 아메리칸 어워드 픽션상 등을 받았다.

이 작품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비수가 돼 자녀를 찌르는 과정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소설은 리디아가 마을에 있는 호수에서 죽은 채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가족은 리디아가 괴한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연하게 추측할 뿐 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소설은 리디아가 죽은 시점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리디아의 부모는 그를 사교파티에 내몰고 혹독하게 공부시킴으로써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게 하려고 한다. 아버지는 홍콩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로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왔다. 어머니는 한때 사회적 성공을 꿈꿨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이들은 딸을 통해 성공을 ‘대리 경험’하려고 한다.

저자는 리디아가 어떤 부담을 안고 삶을 살아왔는지를 통렬한 문체로 보여주며 가족 구성원 간 오가는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은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이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란 통념이 힘없이 무너진다. 리디아의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 서로를 이용하려는 심리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렇다고 특정 인물을 가해자로, 다른 인물을 피해자로 모는 ‘선과 악의 흑백논리’는 아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남몰래 껴안은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소수자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당한 경험을, 어머니는 불합리한 제도로 꿈을 꺾고 좌절한 경험이 있다.

책을 펴낸 마시멜로 관계자는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 모두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며 “우리가 바로 그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