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위원장 임기 마친 홍순직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위원회가 단순히 외국 기업의 불공정 무역만 다뤄선 안되죠. 해외 기관과 수출 기업 간 만남의 장 주선 등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홍순직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사진)은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간 수행한 무역위원장직에 대해 이같이 회고했다. 무역위원회는 덤핑방지관세·상계관세 부과를 위한 산업피해를 조사·판정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준사법적 행정기관이다. 2013년 무역위원장(비상근)에 선임된 홍 회장은 지난 6월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홍 회장과 무역위원회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부터 상공부 공무원으로 일한 홍 회장은 1980년대 말 무역조사관을 맡아 무역위원회 설립에 관여하는 등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수입규제를 담당할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를 벤치마킹한 무역위원회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무역위원회는 ITC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ITC처럼 강력한 독립기구는 아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무역위원회를 미국처럼 독립기구화해 외국 기업의 불공정 무역에 과감히 반덤핑 판정을 내리고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회장은 “무역위원회를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로 만들지 않은 것은 조직과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며 “무역위원회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를 남발하는 기관이 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2014~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무역기구(WTO)와 ‘무역구제 서울국제포럼’ 행사를 공동으로 연 것을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그는 “무역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WTO와 공신력 있는 무역구제 행사를 열어 주요국 기관장을 한국으로 불러모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스위스 제네바의 WTO 본부를 찾아가 칼 브라우너 사무차장에게 공동 개최를 제의했다”고 했다.

서울국제포럼은 국내 수출 기업엔 평소 보기 힘든 각국의 무역구제 기관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홍 회장은 “WTO와 공동으로 포럼을 열어 세계 각국에서 공정무역 기조와 자유무역질서가 유지되는 데 힘을 보탰다”며 “국내 수출 기업이 해외에서 부당한 수입규제를 당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미국 등지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해법으로는 ‘업계의 적극적 협상 노력’을 주문했다. 홍 회장은 “정부도 공식적 경로를 통해 노력해야겠지만 기업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미국 철강업계가 반덤핑 제소를 하면 양국 철강업계가 만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수입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철강업계가 통상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1990년대 초 산업자원부를 떠나 20여년 만에 무역위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한 홍 회장은 “공무원들이 불평·불만보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에서 부사장도 하고, 대학 교수와 총장도 해봤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또다시 공무원을 할 것”이라며 “공무원들은 대기업의 높은 연봉, 교수의 편안함 등을 선망하지만 실제 와보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