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가 2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가 2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2세가 생기면 미련 없이 골프 포기하고 아이에게 전념할 거예요.”

골든슬래머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29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분간은 골프에 전념하겠지만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US여자오픈, ANA인스퍼레이션, KPMG위민스PGA챔피언십, 브리티시여자오픈 등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해 커리어그랜드슬램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 20일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 이른바 골든커리어그랜드슬램(골든슬램)을 달성했다. 남녀 골프 역사상 최초다.

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통산 72승을 거둔 ‘여자골프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다. 소렌스탐은 아이를 갖기 위해 조기 은퇴를 결심할 정도로 여자로서의 삶을 우선했다.

“스윙코치인 남편(남기협)이 없었으면 기계적인 스윙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골프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은퇴한다면 지금까지 저를 있게 해준 남편이 뭘 하든 내조에 집중하려고요.”

아이에게도 웬만하면 골프를 시키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남편이나 저나 골프 전문가니까, 아무래도 그게 제일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귀국 후 가족과 강릉 경포대에 놀러갔다가 골프를 잘 모르는 할머니와 아이들까지 자신을 알아봐 ‘올림픽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박인비는 “태극마크를 달면 초인적인 힘과 집중력이 생기는 것 같다”며 “대표팀 네 명이 진심으로 누군가 메달을 따주기를 바랐다”고 했다.

박인비는 이날 왼손 손가락에 두툼한 깁스를 한 채 기자회견에 나왔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진단받은 결과 인대 재생을 위해선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 도중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스윙이나 퍼팅을 할 때 워낙 고도로 집중하다 보니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통증을 완화하는 진통제나 소염제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견뎌내야 감각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테이핑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으로 대회 출전은 건강과 컨디션을 고려해 ‘소수정예’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많은 대회를 치렀는데, 앞으로는 스케줄 관리를 잘해야 부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메이저 승수를 더 쌓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손가락 치료가 선결 과제다. 다음달 15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은 포기했다. 메이저 7승의 박인비가 이 대회까지 제패하면 골든슬램에 ‘5대 메이저 대회 석권’이라는 새 기록도 쓸 수 있어 골프계에서는 기대가 컸다. 정부가 주는 금메달 포상금 3억6000만원을 어떻게 쓸지는 아직도 고민이란다.

그는 “살아오면서 세운 목표를 모두 이뤄 스스로도 놀랐다”며 “지금까지 박인비 골프가 샷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인간 박인비를 완성하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