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이 제주에서 열린 ‘2016 벤처서머포럼’에서 “R&D 투자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에 벤처 인증을 내주는 식으로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장이 벤처 인증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들린다. 벤처기업 특별법이 내년 말 일몰을 앞두고 있어 이런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벤처 인증 남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도 지적했듯이 무늬만 벤처가 설쳐대면서 벤처 지원의 효과성이 의심받은 지 오래다. 정 회장은 “주유소 같은 곳도 기술보증기금의 기술평가 보증만 받으면 벤처가 된다”며 이렇게 숫자만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무분별한 벤처 인증 기준이 도입된 이유는 중소기업청, 벤처기업협회 등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 회장이 제안한 대로 R&D 비중을 벤처 지표로 사용한다고 해도 인증 남발이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각각의 R&D 특성, 업종별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 차이 등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하다. 벤처 인증이 세제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보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정부 지원이 아니라 시장적 관점에서 해법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벤처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기업’이라고 보는 미국식 기준이 그런 것이다. 이것만큼 벤처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정의도 없다. 이번 기회에 벤처기업 특별법을 시장 지향적으로 확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벤처 지원이 기존 중소기업 지원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