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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히스토리와 스토리의 충돌에 휩싸이다

입력 2016-08-26 17:54:38 | 수정 2016-08-27 07:08:35 | 지면정보 2016-08-27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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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기사 이미지 보기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세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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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배우 손예진 분)는 떨리는 듯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연설한다.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을 쏟는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이다. 영화관 객석에서도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라를 잃은 울분이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덕혜옹주는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실제론 조선인 노동자들을 만나 연설한 적이 없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큰 차이가 난다. 덕혜옹주는 한글학교를 세우지 않았고,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했다는 기록도 없다. 역사 왜곡 논란을 알고 있는 관객 일부는 영화를 보고난 뒤 더욱 혼란에 빠진다. ‘역사와 비교하며 거리를 둬야 하나, 감동을 고스란히 안고 돌아가야 하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드는 ‘팩션’의 시대. 팩션은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히스토리(역사)’와 ‘스토리(줄거리)’란 두 가치의 충돌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선다. 창작자도, 관객도 고민의 기로에 선다. 한쪽에 치중하는 사이 다른 한쪽과는 멀어진다. 역사와 동떨어지거나 혹은 극적인 재미가 반감되거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재현의 욕망에 충실할 것인가, 욕망을 재현할 것인가.

역사는 교과서 속 하나의 사실로만 존재했다. 쓰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됐다. 사극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교과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으로 영상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역사는 수많은 변형을 거치게 됐다. 다양한 극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히스토리는 스토리로 변신해 더 흥미진진하게 대중에게 다가갔다. 《팩션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를 쓴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디지털 혁명으로 역사보다 가상현실이 더 진짜로 인식되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문자가 아니라 영상 콘텐츠로 역사가 전달되면 감정과 이미지가 무의식에 강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로 배운 지식은 잘 잊혀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인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올해 ‘덕혜옹주’를 본 관객들에게 5년 후, 10년 후 덕혜옹주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상상해 보라.

그렇다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욕망의 재현을 포기해야 할까.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광대 ‘공길’이란 인물을 기억하는가.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딱 한 번 짧게 등장한다. 늙은 선비 역할을 맡은 공길은 광대극에서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먹을 수 있으랴”라고 말했다. 연산군은 불경하다며 먼곳으로 유배보냈다고 한다. 이 짧은 기록에 깊은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 영화 ‘왕의 남자’다. 2005년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1051만명에 달했다.

지워진 역사를 찾아 극적 재미를 더하는 것은 어떨까. 역사가 모든 것을 기억하진 않는다. 잘 알려진 위인의 삶조차 지워진 것이 많다. MBC ‘무한도전’은 20일 ‘도산 안창호 특집’을 통해 안창호 선생이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보여줬다. 묵묵히 독립운동을 도운 가족들의 삶도 담았다. 시청자들은 몰랐던 역사에 놀랐으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삶에 주목했다. 역사엔 가장 기억돼야 할 민중의 삶도 지워져 있다. 노비의 처절한 삶을 재조명한 2010년 KBS 드라마 ‘추노’ 등과 같은 작품이 다시 나와야 하는 이유다. 상상력은 이렇게 사라진 역사를 다시 살아 숨쉬게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역사에 대한 정의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현재의 다양한 해석이 가미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해석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적어도 왜곡된 시선의 자리는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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