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에 5조원대 부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3개월간 채권단과 정부 경제부처, 청와대는 초비상이었다. 산업은행은 ‘조선업 정상화 지원단’을 출범시키는 동시에 대우조선에 얼마를 지원해야 하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비공개 회의인 ‘서별관회의’를 열고,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지난 4월 한진해운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신청하면서 시작된 ‘한진해운 사태’를 대하는 정부와 채권단의 기류는 대우조선 사태 때와 달랐다. 채권단은 용선료 재협상 및 사채권자 설득 등의 조건부터 내걸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수시로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으니, 부족 자금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못박았다.

채권단과 정부가 한진해운 사태에 소극적인 이유로는 △대우조선 학습 효과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차이 등이 거론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2000년 이후 7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는데도 대우조선은 생존을 걱정하는 회사로 전락했다”며 “대우조선 사태가 반면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에 자금 지원을 결정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채권단과 정부를 주춤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해운사가 문을 닫더라도 당장 정권이 입는 타격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우조선이 문을 닫으면 4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쏟아진다. 거제를 비롯한 경남 지역의 민심 동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한진해운의 청산으로 나올 실업자는 수천명 수준이다. 또 부산항만 피해 등도 간접적이고 중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작다는 얘기다.

한진해운의 파산이 몰고올 정치·경제적 파급 영향이 대우조선에 비해 작기 때문에 정부도, 채권단도 절박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