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의 이슬람 성지 ‘예언자의 모스크’ 주차장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보안요원 네 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지난달 4일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의 이슬람 성지 ‘예언자의 모스크’ 주차장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보안요원 네 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 1월 반정부 시위 주도자 등 47명을 집단 처형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사우디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으로 벌어진 터였다. 처형된 사람 중에는 사우디 동부지역 시아파 최고 지도자도 있었다. 이슬람교의 한 종파인 시아파는 사우디 정부의 주축을 이루는 수니파와 대립한다. 시아파 중심인 이란에서 반(反)사우디 시위가 일어나 사우디 공관이 불타자 사우디는 이란과 즉각 단교했다. 사우디 정부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해서다. 국가 내부적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 늘면서 정부가 막다른 곳으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에는 왕실 내에서 쿠데타 움직임도 있었다. 사우디는 국왕이 정치적 실권을 갖고 있는 나라다. 당시 고위 왕자가 작성한 국왕 교체 요구 서한과 이를 지지하는 서한이 잇따라 공개됐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권위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책마을] 오일 파워는 옛말…쇠망론 휩싸인 사우디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낸 캐런 앨리엇 하우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근 사우디를 짓누르기 시작한 정치불안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우디는 중동 최대 경제 대국이다. 한국 원유 수요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등 우리와 경제적 연관도 크다.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 경제 관계도 재편될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진단은 우리로서도 간과해선 안 되는 문제다.

저자는 사우디 내에 가득 찬 갈등과 분열 문제를 다각도로 살핀다. 그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갈등은 여성 문제와 청년 문제다. 여성은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주도해왔다. 이 나라에서는 시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여성들은 내무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남편과 아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법에 저항해 ‘운전 시위’를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청년들은 종교적 엄숙주의에 저항해 반정부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등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충분치 못한 일자리와 형편없는 교육제도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깔렸다.

혼란은 알고 보면 사우디 왕가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왕가는 사회적 불만이 쌓이면 온건한 개혁안을 내세워 이를 잠재운다. 종교 지도자들이 개혁안에 반발하면 이행을 미루거나 무력하게 해 원점으로 돌린다. 왕가 차원에서 보조금을 풀어 시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때도 있다. 이 모든 건 바로 왕가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왕가의 이런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시민들은 더 이상 왕가를 존경하지 않는다.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건 시민들이 현실에 순응하고 있어서이지 왕가의 통치가 제대로 작동해서가 아니다. 저자는 “현 상황이 언제까지고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소련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저자는 30년 이상 중동을 취재한 기자였다. 은퇴 뒤에는 사우디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자료에 의존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왕족, 극빈자, 종교 지도자, 개혁가, 청년, 심지어 테러리스트까지 직접 만나며 사우디를 관찰했다. 외국인 여성이라는 점도 십분 활용했다. 저자는 “이따금 가정집에 방문하면 나는 집주인 남성 및 그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이후에는 건넛방으로 옮겨 여성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했다”고 말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해제에서 “사우디가 직면한 현재의 위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아랍의 경제 중심국가이자 수니파 수장이라는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