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만끽했던 좋은 가을, 그 하루만 더 빌렸으면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애써 자려 하지 말고 푹 쉰다고 생각하라는 어느 정신과 전문의의 말이 생각난다. 안 그래도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푹 쉬자” 그렇게 되뇌는 습관이 있다.

4년 전, 2012년 여름에도 폭염이 찾아왔었다. 밤마다 라디오를 켜놓고 잠들지 않는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달랬다. 어느새 아침이 돼 지독하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은 마치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촛불시위 같았다. 생각해 보니 올해 매미들은 그해보다는 덜 운 것 같다. 심하게 매미들이 울어대는 해는 천적이 나타나는 해라고 한다. 한꺼번에 출현해 일부가 죽더라도 일부는 살아남아서 다시 종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본능 때문이라 한다. 이렇게 남과 북이 합쳐서 울어대면 통일인들 못하랴. 통일은커녕 점점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처럼 멀어지는 우리가 매미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2007년 여름 미국 시카고 도심에 수천 마리의 매미 떼가 등장했다 한다. 매미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믹서 한 대 돌아가는 소리와 맞먹어서 야외 음악회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벽부터 밤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이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것일까?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목숨 걸고 울어대는 매미들 같다. 사실 나는 매미처럼 목숨 걸며 울기 싫다. 하지만 악착같이 울어대는 매미들을 보면 불안해져서 나도 따라 매미 흉내를 낸다.

오래 전 처절한 매미의 속사정을 처음 가르쳐 준 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내 동생이었다. 매미는 유충으로 17년 동안 땅 속에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어른이 된 후 겨우 한 달 동안 지상에서 살면서 짝짓기를 해 알을 나무껍질 속에 낳고는 생을 마감한다고. 종족 보존을 위해 암컷을 유인하거나 질투심을 유발하는 다른 수컷을 위협할 때 그리고 누군가 다가오면 잡힐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더 극성스럽게 운다고 했다.

잠 안 오는 밤에 푹 쉰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그려보면 지나간 세월이 직선으로 그려진다. 이십년 혹은 삼십년이나 되는 이쪽 끝과 저쪽 끝 세월의 거리는 밤과 아침의 거리만큼 정말 그리 멀지 않다. 이십년 전 동생은 식물들을 그리는 누나를 위해 곤충 도감을 사다주었다. 곤충들도 얼마나 꽃만큼 아름다운지 그려보라고. 지금도 갖고 있는 그 곤충 도감 속 매미가 날아올라 울어대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새 틀어놓고 잔 라디오에서 ‘엠씨더맥스’의 ‘하루만 빌려줘’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말이 딱 내 맘 같았다. “볼 만한 영화는 없는지/ 오늘 날씨는 어떤지/ 이젠 아무 상관없어/ 내 곁에 네가 없어서/ 하루만 널 빌려줘/ 안하던 운동을 하고/ 혼자서 옷도 고르고/ 너 없이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잘 안 돼.” 동생의 일생이 바로 그 매미의 일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울던 그 매미가 내일은 울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마지막 소원은 폭염이 아니라 너무도 힘들었던 한 생이었다 해도, 멀쩡한 걸음으로 날씨 좋은 가을을 만끽했던 그 하루만 더 빌렸으면 하는 게 아닐까? 무엇을 더 바라랴. 하루라 한들 더없이 고마울 가을이 또 오고 있다. 내일은 울지 않을 매미가 이렇게 울어대는 것 같다. “하루만 빌려줘.”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