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 벤처기업협회장이 25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2016 벤처서머포럼’에서 내년 말 폐지되는 벤처기업 특별법 개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정준 벤처기업협회장이 25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2016 벤처서머포럼’에서 내년 말 폐지되는 벤처기업 특별법 개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25일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에 벤처 인증을 내주는 식으로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제주 서귀포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열린 ‘2016 벤처서머포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말 일몰을 앞둔 벤처기업 특별법(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내용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판교에 선도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공존하는 벤처 캠퍼스를 조성해 국내 최초의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모델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벤처인증 남발 문제 많아”

정 회장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벤처 정신이 있다면 기업 규모에 관계 없이 벤처로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지금처럼 중소기업 범주 안에 벤처를 묶어 놓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벤처에서 시작해 꾸준히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기업은 규모가 커져도 벤처에 주는 혜택을 동일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은 현재 법인세 감면 등 세제지원과 특허 우선심사, 상장심사 우대 등의 혜택을 받는다.

벤처 인증이 남발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유소 같은 업종도 기술보증기금의 기술평가 보증만 받으면 벤처가 된다”며 “벤처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벤처기업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단순할수록 좋다”고 말했다. “매출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벤처기업 지표로 쓰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중소기업을 분류하는 기준이 과거 자본금, 직원 수, 매출 등에서 현재 매출로 단일화된 것처럼 R&D 비중이 높은 곳 중에서 벤처 인증을 주자는 얘기다. 최수규 중소기업청 차장도 전날 행사 축사를 하면서 “벤처기업 확인 제도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뜯어고치려 한다”고 밝혔다.

◆“판교에 벤처 캠퍼스 조성”

정 회장은 “선도 벤처기업과 창업기업이 한 공간에서 혁신적 구상을 공유하고 사업화하는 벤처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벤처 캠퍼스’는 판교테크노밸리 북쪽에 조성할 예정이며 현재 국토교통부, 경기도 등과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벤처기업에 땅을 싸게 공급하고 여기에 입주하는 선도 벤처기업은 약 30%의 공간을 공공 목적으로 내놓는 게 논의되고 있다”며 “30%의 공간에는 창업기업과 벤처 유관 기관들이 들어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계획이 실현되면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의 벤처 생태계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기는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심재희 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엔텔스 대표)은 “벤처 캠퍼스 내에서 선도 벤처기업이 창업기업에 기자재와 인력, 노하우, 자금 등을 대주고 필요하면 인수합병(M&A)도 할 수 있다”며 “다양한 벤처기업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아이디어를 곧바로 사업화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팁스(TIPS) 창업타운 등 정부 사업과 어떤 차별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심 부회장은 “시간을 단축하고 형식적 절차도 필요없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행정 절차 탓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서귀포=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