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론과 현장의 눈으로 본 일본경제 빛과 그림자
“혁신이란 곧 새로운 연결성이야. 경제 성장이란 새로운 것들의 조합을 통해 창출된다는 뜻이지.”(미키타니 료이치 전 일본 고베대 경제학 교수)

“혁신이 일어나려면 우선 규제 철폐가 중요해요. 통행료나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처럼 빠르고 저렴한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이 필요합니다.”(미키타니 히로시 일본 라쿠텐 회장)

하버드대 출신인 세계적 경제학자 미키타니 료이치와 그의 막내아들로 일본 최대 인터넷기업 라쿠텐을 창업한 미키타니 히로시가 혁신에 대해 나눈 대화다. 《경쟁력(Power to compete)》은 두 부자가 2013년 4월부터 7개월 동안 17번의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경제 이론과 현실 경제의 최전선에 선 두 사람의 대화는 장기 저성장에 빠져 있는 일본의 경쟁력을 쇄신할 방안과 세계 경제의 현실에 대해 논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는 ‘올여름 무인도에 혼자 난파된다면 가지고 갈 책 10권’ 중 한 권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그는 “세계 경제 질서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일본의 미래에 대한 현명한 시선을 담았다”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대담은 아버지 료이치가 경제 이론을 근거로 현실 경제를 분석하면, 히로시가 경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세계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캐치볼을 하듯 이어지는 대담은 경제 이론과 현실적 접근의 조화를 이룬다. 료이치가 슘페터의 혁신이론을 설명하며 ‘창조적 파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히로시는 애플, 삼성 등 세계적 기업들이 실제로 행하고 있는 일들과 자신이 직접 부딪친 한계를 얘기한다.

저자들은 일본이 경쟁력을 상실한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혁신, 운영능력, 아베노믹스에 의문을 제기하는 힘, 저비용 국가 구조, 글로벌 경쟁력, 교육, 브랜드 등 저성장을 돌파하는 7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이들에 따르면 비효율적이고 경직적인 관료제가 일본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다.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신기술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하지만 일본은 기존의 방식을 버리지 못한 채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현상’도 지적한다. 통신과 방송 산업을 보호하는 갈라파고스식 규제가 일본 기업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했다는 것.

이런 제도적 실패의 뒤에는 비효율적이고 경직적인 관료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히로시는 “일본만의 독특한 기준과 비관세 장벽을 세워 일본 시장에서 일본 기업만 번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서 국제무대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며 “정책을 주도한 경제산업성이 개입한 산업들은 하나같이 망가졌다”고 비판한다.

이 책의 제목은 《경쟁력》이다. 이 식상하고 뻔한 주제에 더 이상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싶지만 이론과 현장을 망라한 이들의 통찰은 아직 많은 논쟁거리가 남았음을 깨닫게 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