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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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안혜원 기자] 롯데렌탈 고객인 정민선씨(38)는 올해 초 그랜저 2.4를 4년간(48개월) 장기렌터카로 신청해서 타고 있다. 생애 첫 차 구입을 고려했던 그는 보험 이력이 없어 보험료가 150만원 가량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보험료 부담이 없는 렌터카를 선택했다. 정씨는 "그랜저 렌터카 이용 견적을 받아보니 월 납입금이 할부 구매보다 조금 더 저렴했다"며 "정비를 받을 때 카드 할인, 주유 할인 등의 혜택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회사에 재직 중인 김성재씨(34)는 지난해 BMW 3시리즈를 구매했다. 그는 수입차 구매에 앞서 장기렌터카 상품을 알아봤지만 결국 신차를 사기로 마음을 돌렸다. 김씨는 "렌터카 상품의 경우 차량을 이용한 뒤 인수하지 않을 경우 비용이 더 들었다"며 "5년 뒤 다른 차량으로 교체할 생각이 있어 신차 구매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돈 모아 자차를 산만큼 성취감도 느끼고 내 취향에 맞게 차를 꾸미고 싶었는데 렌터카는 튜닝 등이 어렵다"면서 "원하는 차종이나 옵션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없는 점도 차를 구입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도로에는 '허, 호, 하'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량이 부쩍 늘었다. 개인 장기렌터카 이용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2000년대 들어 정부 차원의 법적 규제가 완화되고 렌터카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렌터카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0년 말 25만7000여대 수준이던 국내 렌터카 등록대수는 지난해 말 54만3000여대로 증가했다.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4800여 억원으로 2조원대를 보인 5년 전보다 2배 늘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신차 중 렌터카 비중은 약 10%로 10대 중 1대는 렌터카가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를 빌려 타는 인구가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내차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리잡혀 있어서다. 하지만 렌터카 산업의 성장세는 압도적으로 높다.

최문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5년간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연평균 3.1% 증가에 그친 반면, 렌터카 산업은 16.1% 증가했다"며 "2010년 전체 승용차 등록대수 대비 렌터카 비중은 전체 1.9%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3.3%로 늘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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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소유에서 사용으로' 인식 전환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렌탈 시장은 자동차 분야다. 롯데렌탈이 기존 렌터카 1위 사업자였던 KT렌탈을 인수한 후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쳤고, 후발주자인 SK네트웍스도 주유소와 스피드메이트(정비 서비스)를 기반으로 렌터카 운영대수를 늘리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소유보다 사용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다. 소비 트렌드가 합리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경제성 높은 장기렌터카 시장이 뜨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입차 판매가 늘면서 신차 구매보단 단기간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장기렌터카 상품이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교체 주기가 짧아진 경향도 렌터카 시장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동차 교체 주기가 3~5년으로 짧은 수입차 고객을 중심으로 장기렌터카에 대한 선호도가 늘고 있다.

최민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업체 리서치 자료를 보면 자동차 교체주기는 3~5년의 비중이 가장 높고 차량의 성능, 디자인 변경 등의 목적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아 렌터카업 성장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개인 장기렌터카 중심으로 수입차 판매가 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수입차의 AS(애프터서비스)기간이 3년인 점을 감안하면 렌터카 이용자의 소비 패턴에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렌터카는 업체가 취득, 정비, 보험, 사고처리, 수리, 대차지급, 매각 등의 차량관리를 처리한다. 이 때문에 실무진 입장에서 부담을 덜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리적인 부분에서 편의성이 좋고 초기 목돈 마련이 필요없는 게 장점"이라며 "차를 소유한다는 '오너 드라이브' 마인드에서 이용만 하면 된다는 '유저 드라이브' 개념으로 인식이 변화된 요인도 크다"고 강조했다.

◆ 렌터카 빅3 실적도 '상승세'

렌터카 시장의 성장에 국내 렌터카 '빅3' 업체들의 실적도 상승세다. 전국 렌터카 업체 수는 1000여개에 달하지만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들 브랜드 렌터카 3사가 절반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렌터카가 24.9%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어 AJ렌터카 11.8%, SK렌터카 10.3% 순이다.

롯데렌탈의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9% 늘어난 7447억원, 영업이익은 76.3% 증가한 575억원을 기록했다. 장기올해는 렌터카 부문의 실적 호조를 등에 업고 지난해(1조2800억원)보다 증가한 1조5000억원의 매출 늘린다는 목표다.

SK네트웍스는 자동차부문 상반기 매출 3325억원, 영업이익 151억원을 냈다. 특히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70%가까이 늘었다. AJ렌터카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매출은 성장세다.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2.1% 늘어난 3434억원, 영업이익은 16% 줄어든 178억원을 올렸다.

최석원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렌터카 시장의 성장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구조적인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추세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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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국에서는 시장의 팽창은 힘들다

렌터카 시장의 성장세가 돋보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장의 급격한 확장은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렌터카 시장이 성장하기에는 국내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에서다.

최문선 연구원은 "한국 내수시장은 너무 작고, 교통에 있어 굳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격이 합리적"라며 "렌터카 사업 모델은 가격에 민감한 젊은 층에 국한돼 대중화 직전의 캐즘(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 진입 초기에서 대중화로 시장에 보급되기 전까지 넘어야 하는 침체기)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자동차 렌탈의 경우 수많은 영세업체들이 지역별로 산재해 있어 규모의 경제와 거래 투명화는 아직 미흡한 편"이라며 "자동차의 경우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 이후 많은 소상공인들이 시장에 진입했다. 렌탈 특성상 지역에 기반한 소규모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이 대형사와 지역 영세 사업자로 양극화돼 있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신차 구매 대비 렌터카 사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편이다.

최민하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승용차 대비 렌터카 사용률이 3%대로 일본, 미국 등에 비해 낮다"며 "미국의 경우 주요 자동차 제조사 판매량의 10% 이상이 렌터카 등의 상품 판매량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국토 면적이 넓어 공항과 도시, 도시와 도시 간의 시장 규모가 큰 것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렌터카 사용률은 현저히 낮다"라고 덧붙였다.

김정훈/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