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하다’ ‘특색 없다’. 국내 대기업 맥주는 종종 이런 악평에 시달린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로부터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밍밍한 국산맥주…불필요한 규제가 원인"
‘특별한 맛’을 원하는 애주가들은 수입 맥주나 수제 맥주를 찾아 떠나고 있다. 국산 맥주는 유통망 우위를 바탕으로 식당과 호프집 등에서 90%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선 50% 가까운 점유율을 수입 맥주에 내주며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산 맥주의 부진이 생산시설과 유통망, 가격 등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 국내 맥주 대기업이 연구개발(R&D)을 게을리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수십 년째 비슷한 맛의 국산 맥주를 마시는 ‘후생 저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맥주산업 시장분석’ 연구 용역을 맡겼다. 오는 30일 공청회에서 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설비 규제가 시장 진입 막아

연구 용역을 수행한 서울벤처대학원대 산학협력단 연구진은 공청회에서 경쟁제한적 규제 현황과 문제점을 집중 거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규제는 시설 규제다. 주세법을 보면 일반 맥주 사업자는 발효조 25kL 이상, 저장조 50kL 이상의 설비를 갖춰야만 면허를 딸 수 있다. 일종의 진입 장벽이다. 맥주시장이 과점체제가 된 까닭이다.

수제 맥주를 제조하는 소규모 맥주 사업자의 맥주 생산량은 법으로 제한된다. 주세법은 저장시설과 발효시설의 용량이 5~75kL 이내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최대 맥주 용량도 300kL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소규모 맥주 사업자들이 불공평하다며 하소연하는 이유다.

◆대형마트에선 못 파는 수제 맥주

유통 규제의 벽도 높다. 2014년 4월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돼 소규모 맥주 사업자도 자신의 음식점이 아닌 다른 음식점에 납품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외부 유통은 전국 1200여곳에 불과한 종합주류도매상을 거쳐야 한다. 소규모 맥주 사업자는 도매상과 거래를 트는 것이 어렵고 유통 비용도 버겁다. 대형마트나 슈퍼 등에 판매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맥주 애호가들이 수제 맥주를 마시려면 서울 이태원 등 수제 맥줏집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직접 가야만 한다.

국산 맥주에 관한 가격 규제도 문제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국세청은 고시를 통해 국산 맥주가 출고 가격 이하로 할인 판매되는 것을 막고 있다. 수입 맥주는 출고 가격에 대한 정보가 없어 출고가를 기준으로 하는 할인 판매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세금 역시 국산 맥주는 출고가(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 등)의 72%를 부과하지만 수입 맥주는 수입가(수입신고가+관세)를 기준으로 매긴다. 가격과 세금 부담을 던 수입 맥주업체들은 다양한 제품 개발과 판촉 활동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0년 2.8%에 불과하던 수입 맥주 점유율은 2015년 8.4%로 높아졌다.

송정원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장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과 용역 결과 등을 종합 분석·검토해 관계부처에 제도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