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글로벌 연기금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 연기금들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다. 영국 350개 상장기업들의 기업연금 부족분은 1490억파운드에 이른다. 미국 기업(S&P 1500)들의 연금 부족도 5620억달러나 된다. 기업 연금만이 아니다. 국가 재정에서 연금을 충당하는 국가들의 연금채무가 GDP의 100%를 넘는 나라만 14개에 이른다. 프랑스와 폴란드는 300%를 초과한다. 국가와 기업들이 연금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금 자금조달이 ‘한계상황’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연금 수혜자들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65세 이상이 생산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저금리로 운용수익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에선 연금 운용기관의 수익 기반인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수익률 저하를 참지 못해 부동산이나 사모펀드 등 각종 대체투자수단을 찾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 미국 최대 연금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의 수익률은 0.6%다. 올 6월까지 목표치 7.5%의 10%에 불과하다.

견디다 못한 국가들은 연금 수령개시 연령을 높이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최근 법정 퇴직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9세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독일뿐 아니다. 영국이나 일본 프랑스 등 모든 국가에서 연금지급 개시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금에 대한 불안은 개인에게 저축을 늘리게 하고 기업들엔 투자를 꺼리도록 한다. 이에 따라 유동성은 더욱 메말라가고 있다. 연금 약속액을 주려면 기업을 청산할 수밖에 없다는 미국 기업들의 자조도 들린다.

20세기 복지 포퓰리즘이 낳은 파국이다. 이 파국이 낳는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2060년 국민연금의 고갈 연도 역시 앞당겨질 것이다. 고령화 복지시대의 파국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