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논의의 주도권이 정치권으로 옮겨 가면서 ‘전력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발전소 인근 주민의 전기료를 깎아주고, 발전소에서 걷는 세금은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기료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참에 표심(票心)을 챙겨보자’는 의원들 때문에 누진제 개편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票퓰리즘'에 산으로 가는 전기료 누진제 개편
◆숟가락 얹는 의원들

정부와 여당이 누진제 개편을 위해 지난 18일 출범시킨 당정 태스크포스(TF)에는 각종 민원이 몰려들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지역 주민들이 내는 전기료를 깎아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TF 관계자는 “누진제 논란을 틈타 지역구 인기 관리를 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대기오염 저감과 새로운 전력수급체계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어 의원은 “누진제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전기료 인하를 요구했다.

동시에 “석탄발전소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지향적인 에너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독일 등 해외 사례를 볼 때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전력 생산 단가가 상승해 전기료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석탄발전소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세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어 의원 지역구는 석탄발전소가 있는 충남 당진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이 개입하면 혼란만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부가세 감면 주장까지

김태년 더민주 의원은 교육용 전기료의 부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부가세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야권 일부에서는 교육용뿐 아니라 산업용을 제외한 모든 전기료의 부가세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기요금에는 부가세(10%)와 준조세인 전력산업기반기금(3.7%)이 포함돼 있다. TV 수신료 2500원도 전기료와 함께 청구된다.

한국전력의 지난해 전력 판매 매출은 54조원이었다. 이 중 산업용을 제외한 매출은 24조6000억원으로, 부가세를 면제하면 어림잡아 2조4600억원의 세금이 덜 걷힌다. 공공요금 중 수도요금에는 부가세가 없지만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에는 부가세가 붙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전기가 물과 같은 필수품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부가세를 없애는 것보다 저소득층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 정책적으로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산업용 전기에 ‘불똥’

야권은 누진제 개편으로 가정용 요금이 덜 걷히면 산업용 요금을 올리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누진제는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된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전기요금개선 TF 회의에서 “서민 피를 빨아 대기업에 전기를 대줬던 구조가 (누진제 논란으로) 드러났다”며 “(누진제 개편으로) 생기는 결손 부분은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받는 산업용 전기료를 조정해 해결한다는 것이 더민주의 기본 방향”이라고 말했다.

더민주는 6단계인 누진 구간을 2~3단계로 조정하고, 11.7배인 최저-최고 구간 누진율을 2~3배로 줄이기로 했다. TF는 오는 26일 독자적 누진제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기업들이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할 것”이라며 “물가 상승으로 오히려 서민층에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김재후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