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승진에서는 유비가 조조에게 밀리지 않을까요?”

대기업에 근무하는 신입사원 조모씨(26·여)는 요즘 만화 삼국지를 읽고 있다. 같은 팀 직원들이 인사를 앞둔 임원들의 스타일을 삼국지 등장인물에 빗대 비교하는 때가 많아서다.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한 조씨는 가끔 직장 동료 사이에서 “A상무는 전형적인 조조 스타일”, “B상무는 C전무의 관우와 같은 존재” 등의 말들이 나오면 조용히 쓴웃음만 지어야 했다. 그는 “남자 동기들은 삼국지를 읽지는 못했어도 게임으로 접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 말이 통한다”며 “사내 정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아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김과장&이대리] '습자지 지식'도 안 쌓으면 대화가 안 통해
김과장 이대리들 사이에 ‘넓고 얕은 지식’이 화두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 거래처 등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빠진 상사와의 출장, 스포츠에 빠진 동료와의 술자리를 좀 더 즐기기 위해 오늘도 많은 김과장 이대리는 업무와 관련 없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30대 직장인의 이 같은 숨은 속사정을 시원하게 해결해줬기 때문이라는 것이 출판업계 분석이다.

◆노래에서 경제까지…“배울 것 많아”

한 대기업 신입사원 정모씨(28)는 최근 회식자리에서 부장의 질문에 당황한 기억이 있다. 갑작스레 부장이 “가수 김민기를 아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 본 가수의 이름이라 정씨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어 부장은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만든 사람인데 그 노래는 알고 있지?”라고 정씨에게 되물었다. 정씨가 “그 노래는 양희은이 만든 것 아니냐”고 답하자 부장은 한동안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침이슬은 1970년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다. 정씨는 “회식 때면 7080노래(1970~1980년대에 불리던 노래)는 물론 노래의 역사까지 강제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동기들끼리 어디서 특별강습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유모씨(34)는 경제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다. 최근 경제 상식을 몰라 진땀 흘린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지난 6월 직장 내 팀원들과 1만원씩 걸고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실현될지를 놓고 내기가 붙었다. 하지만 당시 유씨는 브렉시트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었다. 그는 “정말 식은땀이 났지만 들키지 않고 넘어갔다”며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내기에 참여한 동료 중 브렉시트를 몰랐던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있었다”고 귀띔했다.

◆상식 부족하니 ‘업무’도 어려워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대리(33)는 최근 나라별 식사예절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5월 회사 김모 부장(50)의 일본 출장에 동행했다가 크게 꾸중을 들어서다. 출장에서 박 대리와 김 부장은 현지 바이어를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박 대리는 평소 습관대로 젓가락을 테이블에 수직방향으로 내려놨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뒤 김 부장은 “식사 매너도 모르느냐”며 박 대리에게 화를 냈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젓가락을 수평으로 올려두는 것이 예의였던 것. 박 대리는 “일본 식사예절까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며 “출장이 잦은 나라의 경우 미리 식사예절을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화학제품회사 홍보팀에 근무하는 양모 주임(28)도 입사 당시 실수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다. 양 주임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월 입사 이후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홍보팀에 배치됐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주요 뉴스 스크랩’이었다. “통신사 뉴스를 체크해달라”는 지시에 SK텔레콤, KT 등 이동통신사 관련 뉴스를 스크랩해 제출했다.

그런데 상사는 “왜 이동통신사 뉴스만 스크랩했느냐”고 되물었다. 상사가 말한 ‘통신사’는 신문 및 방송사에 뉴스를 공급하는 연합뉴스, 뉴시스 등을 의미한 것이다.

대기업 해외구매팀 김모 대리는 반대로 일반상식이 부족한 신입사원을 믿기 어려워 늘 ‘의심병’에 걸렸다. 김 대리는 최근 남미에 있는 협력사로부터 “신입사원인 정씨가 매일 밤 10시가 넘어 업무를 시킨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신입사원이 시차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는 걸 알았다. 김 대리는 “최근 입사하는 친구들은 해외 연수도 많이 다니는데 시차를 모를 줄 몰랐다”며 “사소한 것이라도 그 이후로는 믿고 맡기기 힘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한자를 꼭 알아야 하나요?”

한 중견 건설사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34)는 올해 초 홍보팀에 배치되며 등골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조선일보를 좀 갖고 와보라”는 모 임원의 지시에 동아일보를 들고 간 것이다. 한자로 된 두 신문의 제호를 정 대리가 분간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그는 “중·고교 때 한자를 배울 기회가 없는 데다 홍보팀 배속 이전에는 뉴스를 인터넷으로만 읽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조선일보는 막연히 ‘한자로 제호가 쓰인 신문’이라고 생각해 한자 제호 신문을 들고 갔는데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신문 이름도 못 읽는 홍보 직원’으로 찍혀 상사들에게 크게 혼이 난 정 대리는 요즘 별도로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유통기업에 다니고 있는 신모 대리(29)도 한자 때문에 회사에서 놀림감이 됐다. 그의 상사는 저녁 회식자리면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10년 넘게 미국에서 공부한 신 대리에게 이런 이야기는 불편한 주제였다. 그래도 그동안은 적당히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문제는 최근 회식자리에서 발생했다. 상사는 신 대리에게 “근대사 인물 중에 ‘단지(斷指·손가락을 자르는 것)’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신 대리는 ‘단지’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신 대리의 답은 “그게 뭐예요?”였다. 그는 요즘에는 신문을 정기구독하며 틈틈이 낯선 단어나 상식을 익히는 데 열중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