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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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은 22일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에 대해 “충분하지 않지만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며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정부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한·중 수교 24주년(24일)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에 대해 위협감을 가질 수 있으나 국익에 맞고, 해야 할 걸 안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 “중국은 주변국을 얕잡아 보는 대국주의·복속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의 핵심 이익을 정해 놓고 미·중 사이에서 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중 수교 24주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부 12년은 순항하면서 한·중 관계가 새롭게 구축되는 시기였다면 후반 12년은 양국 간 산업 관계가 복잡하게 엉켜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한국이 업스트림(기술 수준에서 상류 부문)에 못 가고 주춤하고 있는데 중국이 우리 수준까지 빨리 와서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선언하면서 중국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미국을 보고 있다. 최근 우리는 북한 핵 문제 때문에 동북아에 점점 갇혀가고 있다. 한국 외교의 실패는 미·중 관계 속에 한·중 관계를 종속변수화한 것이다. 한·중 간 이익 균형과 가치 균형이 깨지면서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 종속됐고, 결국 독자적인 외교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이 북한 미사일을 다 막지도 못하는 사드를 배치해 중국과 사이를 나쁘게 하느냐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드는 우리 안보를 위해 충분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사드 배치가 남북과 미·중 간 군비 경쟁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으나 (사드 배치가 안 되더라도) 어차피 군비 경쟁은 벌어진다. 다만 우리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국내외적인 파장이 예견됐지만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

▷사드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때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발표했다. 중국 봉쇄 전략으로 오해받을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 말기에 사드를 갖다 놓는다고 하고,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중국으로선 위협감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안 할 수는 없다. 우리 이익에 맞으면 외교력을 총동원해 해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흔들리면 안 된다. 사드 배치가 국익에 맞는다고 결정 해놓고 이제와서 정부가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나. 중국이 리트머스시험지를 우리에게 넣은 것이다. 우리를 ‘딱’ 때리니 분란이 일어나 꼼짝 못하더라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 다만 물밑 대화는 필요하다. ”

▷중국이 경제 보복을 시사하는데.

“중국은 이익추구형 국가다. 그들에게 이익이 있는 한 절대 적대시 하지 못한다. 결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못 벗어난다. 사드 배치가 양국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일시적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본심은 매우 싸늘해질 것이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가 충돌한다.

“적어도 앞으로 20년간은 한·미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이 제대로 유지 안 되면 우리는 계속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과 광범위한 경제 통합 체제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연미화중(聯美和中: 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는 화합)’한다고 하지만 미국과 동맹을 강화할수록 중국은 한국에 대해 불신감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무시하지는 못한다. 미·중 관계가 험로로 빠져들지만 양국이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험악한 국면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한·미 관계도 좋고 한·중 관계도 좋은 함수는 찾기 어렵다. 미·중 사이에서 고뇌하며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 할수록 중국은 우리를 얕볼 것이다. 우리의 핵심 이익을 정해 놓고 끊임없는 설득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교두보 역할을 하지만 한·미 동맹 때문에 중국의 신뢰 자산 축적은 어려워질 것이다. 이 둘 사이 어디에서 균형점을 잡느냐가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이다. 내년 중국에서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되고 미국은 대통령이 바뀐다.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도 ‘바통터치’를 잘 못하면 어려운 국면에 빠질 수 있다.”

▷사드를 고리로 북한과 중국이 더 가까워지는 흐름이 있다.

“중국은 북한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숨통을 죄는 방식으로 다룬다. 사드 때문에 중국이 북한하고 가까워질까 봐 염려하는데, 한계가 있다. 북한과 중국이 북·중 관계를 수단으로 우리를 압박하는데, 이에 굴욕적으로 휘둘려서는 안된다. 러시아와 인도 등 중국과 대척 관계에 있는 나라들과 외연을 넓혀 전방위적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지, 너무 중국에 매이면 한·중은 끊임없이 불안한 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

▷중국이 대국굴기를 내세우며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은 굉장히 감정적인 나라로, 자기 나름의 핵심 이익과 안 맞으면 전방위적으로 보복하려는, 전체주의적 외교 단면을 보인다. 대국굴기는 미국이 아시아의 텃밭을 챙길까 봐 두려워 들고 나온 것이다. 대국으로서 당당하게 미국과 맞선다고 했는데 아직은 세계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고 외교력을 행사하는 매너나 표현을 보면 대국 풍모를 느낄 수 없다. 힘을 가지고 생존하려고 한다. ‘어떻게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같냐’는 대국주의·복속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다.”

▷한·중 경제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2008년 이후 중국이 중화학공업에 집중하면서 우리 중화학공업과 전면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세기 들어 우리는 다가온 전환기의 관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돌파구는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진보시키면서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는 등 중국과의 중복·경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국보다 최소한 반보 이상 앞서가지 않으면 생존방정식은 풀기 어렵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