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슬램' 달성한 박인비] '여제의 귀환' 뒤엔 이 남자가 있었다
“아니 여기 왜 이러고 계십니까?”

박인비가 갤러리들의 환호 속에 금메달 시상식을 준비하는 동안 한 남자가 갤러리 스탠드 밑 그늘에서 쪼그리고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제의 남자’ 남기협 씨(35)다. 그는 4라운드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박인비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갤러리기도 하다. 남씨는 “자랑스럽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싱긋 웃기만 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인터뷰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냥 여기 있을래요”라고 했다.

많은 이들은 그가 지난 2014년 박인비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부 잘 얻었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 부부를 잘 아는 이들은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박인비가 ‘완벽한 제 짝’을 골랐다는 것이다.

그는 슬럼프와 부상으로 골프를 포기할 뻔한 박인비를 두 번이나 구해냈다. 처음 손을 내민 때가 박인비가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던 2009년부터 2011년까지다. 2008년 LPGA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두각을 나타낸 박인비는 완벽한 스윙욕심에 오히려 스윙을 망가뜨렸다. 박인비는 ”비디오 가게나 하고 싶다“며 골프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남씨의 제안으로 새로운 스윙 메카니즘을 익히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천천히 수직으로 들어올려 몸통 회전과 헤드무게로만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현재의 ‘박인비표 스윙’이 이때 완성됐다. 2012년 에비앙마스터스 우승컵으로 복귀를 알린 박인비는 그해 LPGA 투어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6승에 세계랭킹 1위까지 꿰찼다.박인비는 “골프를 다시 시작하게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남편을 치켜세웠다.

올림픽 금메달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도 남씨다. 박인비는 “손가락 부상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스윙이 나오곤 했는데 남편과 남편의 선배(김응진 프로)가 문제점을 찾아내 인천의 잭니클라우스GC에서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보완 훈련을 해 이런 문제를 해소했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통증 때문에 쪼그라든 스윙 아크를 크게 키우면서 공이 맞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통증을 줄이고 리우의 돌개바람도 뚫어낸 ‘금메달 스윙법’이 이렇게 탄생했다. 이영미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부회장은 “올림픽 코스는 수세미처럼 억센 페어웨이 잔디 때문에 가파르게 치는 다운블로보다 걷어치는 게 유리했다”며 “이런 특성을 파악한 집중 훈련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