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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경부선

입력 2016-08-21 17:48:53 | 수정 2016-08-22 03:41:46 | 지면정보 2016-08-22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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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일본에 간 수신사 일행이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일본 관리가 이들을 기차역으로 안내했다. 도쿄까지 특별열차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일행은 이 열차가 긴 복도로 이어진 집, 즉 장행랑(長行廊)인 줄 알았다. 역관으로 참여한 박기종의 호기심은 특별했다. 4년 뒤 2차 수신사를 따라갔다 온 그는 조선에도 철도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1889년 주미 대리공사 이하영이 서양 철도모형을 갖고 귀국해 국가 차원의 철도 건설을 건의했다. 철도의 필요성을 느낀 고종은 사설회사에 운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철도를 건설하려 했다. 미국인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딴 것은 1896년. 투자자를 찾지 못한 그는 3년 뒤 일본에 이를 넘겼다. 조선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결국 일본이 완공했다.

경부선도 마찬가지다. 먼저 추진한 것은 미국이었으나 일본이 1901년 착공해 1905년 완성했다. 그 사이 박기종이 삼랑진~마산 구간 부설권을 얻었다가 자금 부족으로 일본에 넘겼다. 경의선도 프랑스 회사와 조선인을 거쳐 일본 자금으로 완공됐다.

대부분 철도 기술이 일본에서 들어온 것은 이런 연유다. 열차가 좌측 주행인 것도 일본이 영국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경부선 역시 일본이 영국에서 돈을 빌려 건설했다. 물론 자본금 중 25%는 일본이 댔다. 나머지는 외국 차관과 사채로 충당했다. 경부선 철도가 빨리 완공된 데는 러일전쟁이라는 변수도 작용했다. 이른바 수송망 확보를 위한 속도전이었다.

경부선은 1908년 경의선과 연결됐다.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급행열차가 다녔다. 광복 후에도 경제와 사회의 중추동맥 역할을 했고, 6·25 땐 군수물자와 병력 수송을 담당했다. 열차 속도가 빨라진 것은 전후 유엔군의 공여와 미국의 원조로 디젤 기관차가 투입된 뒤였다. 2004년부터는 KTX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서울~부산 간을 2시간40분 이내에 주파했다. 새마을호보다 1시간30분 이상 줄었다.

옛 수신사 일행이 그렇게 신기해 하던 일본의 기차보다 27년 늦게 시작됐지만, 철도가 우리 경제와 사회 발전에 미친 영향은 무척 크다. 이젠 세계를 상대로 고속철 시대의 기술 경쟁을 벌일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집단민원과 정치적 고려 때문에 저속철이 됐고 노선도 뱀처럼 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많다. KTX는 외부 풍경을 볼 수 없다는 혹평도 있다. 곳곳이 방음벽 아니면 터널이라는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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