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풍(外風), 모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민간 경제연구소의 독립성을 지켜줘야 합니다.”

국내 주요 민간 경제연구소장을 지낸 A씨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민간 연구소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돼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민간 경제연구소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조직”이라며 “이런 성격을 도외시하면 민간 연구소가 국가 싱크탱크 기능을 다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구소장에서 물러난 뒤 10년간 공개 활동을 접고 집필에 몰두해온 그는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A 전 소장은 “10여년 전만 해도 정부의 고위 경제관료와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이 수시로 만나 경제 정책에 대해 깊이있는 의견을 나눴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위상이 약화된 원인으로는 “독립성과 공공성이 훼손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꼽았다.

그는 “내가 연구소장으로 있을 때도 경제성장률 전망 보고서를 내면 정부에서 그룹 총수나 경영진 등을 통해 ‘왜 이렇게 수치를 낮게 잡았냐’ ‘기업들이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니냐’며 압력이 많이 들어왔다”며 “최근엔 그런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A 전 소장은 “정부는 다양한 민간 경제연구소를 키우는 것을 장려하고 그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여기저기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수록 정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내에 제대로 된 민간 경제연구소가 최소 5곳 이상은 있어야 이들이 우수한 박사급 인력을 흡수하고 선의의 경쟁도 하면서 양질의 보고서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전 소장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한국판 브루킹스’ 같은 민간 연구소를 설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일반인에게서 거둬들이는 천문학적 기부금으로 운영되는데 한국에는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 연구소 대신 인프라와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국책연구원을 잘 활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금융연구원 등 굵직한 국책연구소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원하는 게 아니라 결론이 정해진 용역 보고서만 발주하고 있다”며 “국책연구소를 마치 정부의 하청기관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A 전 소장은 “장관까지 지낸 고위공무원들이 지금처럼 로펌 사무실에 앉아 있는 대신 국책연구소에 들어가 현장 경험을 살려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책에 반영시키는 선순환 구조도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