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 와서 창업대회 여는 중국
대학을 졸업한 뒤 재난 관련 스마트홈 센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린 임준영 에스오티시스템즈 대표가 지난 17일 기자에게 연락해 왔다. 중국 상하이시가 한국에서 창업경진대회를 연다는 본지 기사를 보고 나서다. “지진이 나면 진동을 감지해 가스밸브 등을 잠그는 센서를 개발했는데 자연재해가 많은 중국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 대표 외에도 여러 곳의 스타트업에서 문의가 왔다. 대회의 한국 주관사는 첫 대회인 만큼 국내 예선 참가 스타트업을 10개 정도로 잡았지만 2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지원한 상태다.

대회에 지원한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중국 시장 공략에 구체적인 전략이 있었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육성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지난 5월 독립한 웰트는 내장 센서를 착용한 사람의 허리둘레와 걸음 수, 과식 여부를 측정하는 스마트밸트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참가했다. 이미 미국에서 판로를 뚫은 가운데 이번에 중국 사업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미용의료기기 스타트업인 스킨렉스는 중국 진출을 타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 창업대회에 입상하면 과거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한 번 중국 시장 개척에 나설 예정이다.

사업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뒤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기존 기업들과 달라진 점이다. 한국 내 투자가 적다면 활동 근거지로 굳이 한국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적다. 여건만 보장되면 어디에서든 비즈니스를 하기 원한다. 창업자가 국가와 시장을 선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나간 스타트업이 중국에 정착해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창업자의 국적은 한국이라도 회사는 중국 회사로 볼 수 있다. 상하이 등 중국 지방정부들이 돈을 들여 외국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스타트업 정책은 국내에 머물고 있다. 중국처럼 해외 유망 스타트업을 국내로 수혈해 창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높이는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