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진의 역사
초창기에는 사진 한 장 찍는 데 6~8시간이나 걸렸다. 풍경만 찍고 인물은 엄두도 못 냈다. 1839년 프랑스 화가가 은판을 이용한 현상법을 개발한 뒤에야 현대식 사진기가 나왔다. 곧이어 종이인화법 덕분에 복제가 가능해졌다. 1940년대에는 촬영시간이 20분으로 줄었다. 시인 에드거 앨런 포와 작곡가 쇼팽의 사진이 이렇게 해서 빛을 봤다.

사진의 대중화는 1888년 코닥의 롤 필름이 열었다. 당시 100장짜리 필름을 넣은 사진기를 25달러에 내놨다. 이걸 다 찍고 10달러와 함께 보내면 인화해주고 새 필름까지 넣어주는 서비스로 인기를 모았다. 이는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 등의 손을 거쳐 영화 제작에 영감을 줬다.

사진은 현대미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사실주의 회화가 저물고 인상파 야수파 등 새 미술사조가 등장했다. 발터 벤야민의 표현대로 새롭게 등장한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밖에 없는 일품 일회성의 오리지널에 대한 신화를 깨고 미학적 사유의 새 장을 펼치게 했다.

극도의 사실성 덕분에 한 장의 사진은 백 마디 말보다 강했다. 이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둔갑시키기도 했다. 1920년 한 소녀가 찍은 사진에서 숲속의 요정이 발견되자 전 영국이 흥분했다. 지금 보면 조악한 합성 사진이지만 《셜록 홈스》의 작가 코난 도일까지 열광했다. 1989년 루마니아 인종 학살 사진은 더했다. 잔혹한 독재자에 모두 경악했지만 사실은 봉기 주도자들이 공동묘지 시신과 식중독으로 돌연사한 아이로 연출한 것을 사진기자들이 의심 없이 찍은 것이었다.

윤리 논쟁도 자주 불거진다.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소녀 뒤의 독수리를 찍은 사진작가는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몰려 자살하고 말았다. 환경재앙을 고발하는 사진 중에도 일부러 꾸민 사실이 뒤늦게 들통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최초로 사진에 찍힌 사람은 고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863년 청나라에 간 사신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혼을 뺏긴다고 겁을 냈다는데 다른 나라도 비슷했다. 이젠 디지털 혁명으로 스마트폰이 사진기를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한편에서는 아날로그만의 색채를 즐기는 마니아층이 늘고 있다. 피사체는 그대로인데 광학기술은 급변한다. 인간의 감성도 마찬가지다.

마침 전설적인 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대표작이 27일부터 한미사진미술관에 전시된다. 프랑스 여성 사진작가 울라 레이머의 특강도 25일 저녁 홍익대입구에서 열린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