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이 취미인 1인 가구가 모여사는 공유주택 ‘우주'. 우주 제공
영화관람이 취미인 1인 가구가 모여사는 공유주택 ‘우주'. 우주 제공
지난겨울 어느 날. 프리랜서 디자이너 한지인 씨(35)는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시달렸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원룸 현관문을 열었다. 적막과 어둠, 냉기가 그를 맞았다. 5년째였다. 적응될 만도 하지만 쓸쓸함은 면역조차 생기지 않았다. 거실, 부엌, 욕조도 없는 원룸에서 그날도 혼자 잠들었다.

한씨는 지난 3월 이 생활을 청산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 꾸며진 ‘셰어하우스’로 들어갔다. 전용면적 156.99㎡의 아파트. 7명이 함께 사는 집이다. 방은 룸메이트 1명과 같이 쓴다. 거실과 부엌 욕실 등은 공유한다. 그가 부담하는 비용은 월세 포함 49만5000원이다. 서울 변두리 원룸 월세 50만원보다 싼 비용으로 여의도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는 “집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 있고, 함께 밥먹을 사람이 있다는 게 이 생활을 택한 이유”라고 했다. 가족과 사는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였다.

셰어하우스가 새로운 주거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셰어하우스는 ‘공유(share)’와 ‘집(house)’을 합친 말이다. 아파트나 빌라 등에 여러 명이 함께 산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 1990년대 한국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나오는 집과 비슷하다. 원룸, 오피스텔에 사는 것보다 싼 비용으로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일상을 함께하는 공동체와 비슷하다. 공동체의 조건도 있다.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고, 설거지 등 집안일도 정해진 순서대로 해야 한다. 혼자 있는 자유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Life & Style] 취향맞춰 끼리끼리…1인 가구, 같이 산다
국내 셰어하우스 정보 포털사이트 ‘컴앤스테이’를 보면 셰어하우스 운영 업체는 30여개다. 이들은 모두 70여개 지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 지난해 설립됐다. 등록하지 않은 업체를 포함하면 국내 셰어하우스는 100개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셰어하우스 시장을 개척한 업체는 우주다. 2013년 5월 서울 종로 권농동의 한 주택에 1호점을 열었다. 혼자 살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직장인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마포 성북 영등포 관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은 서울 12개 지역에서 26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우주 지점은 대부분 아파트다. 주택도 있다. 여성전용 남성전용 남녀공용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월세는 평균 40만원 선이다. 보증금으로 두 달치 월세를 내면 된다. 우주는 지점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다. 독서 요리 영화 야구 자전거 등의 취미에 따라 집을 찾아갈 수도 있다.

서울 통의동 서촌길 안쪽에 자리잡은 ‘통의동집’도 유명하다. 3명의 젊은 건축가로 구성된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정림건축문화재단과 손잡고 2013년 11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을 셰어하우스로 꾸몄다. 7명이 2~3층에 있는 방 7개에 각각 산다. 지하 부엌과 1층 라운지는 함께 쓴다. 월세는 면적에 따라 57만~67만원 선이다.

김민철 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는 “통의동집은 느슨한 공동체를 추구한다. 혼자 살면서도 함께 사는 듯한 적당한 거리감이 특징”이라고 했다. 서울소셜스탠다드는 신림동 ‘소담소담’, 역삼동 ‘위드썸띵’ 등도 운영하고 있다.

셰어하우스는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대형평수 아파트 소유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5개 지점을 운영 중인 ‘머물공’은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다. 아파트 소유자와 계약을 맺고 입주자를 모집하는 등 운영 및 관리를 대행한다. 월세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모델이다. 머물공 관계자는 “셰어하우스는 양질의 주거지를 원하는 1인 가구와 세입자를 찾는 대형 아파트 주인 간 수요와 공급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한 가구에 임대했을 때보다 더 많은 월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셰어하우스는 고령화 시대에 홀로 사는 노인의 대안 주거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주거학회는 노인 1인 가구를 위한 ‘시니어 셰어하우스’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고령화가 먼저 이뤄진 일본 스웨덴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