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상대로 270억원대의 ‘소송사기’를 벌였다며 검찰이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에 이어 롯데그룹 수사 시작 이후 현직 계열사 사장에 대해 청구한 두 차례의 영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룹 비자금 등 ‘몸통’ 수사로 들어가기 위한 별건 수사 단계에서부터 암초를 만난 것이어서 검찰에 ‘비상’이 걸렸다.
난항 겪는 검찰 롯데수사…"의욕이 과했나?"
◆법원 “혐의 다툴 여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19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허 사장에 대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허 사장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사기’를 벌여 세금 270억원을 환급받고(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협력업체로부터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았다며(배임수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혐의 자체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거나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든 만큼 검찰로서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기각 사유와 달리 검찰 수사가 부실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서다.

검찰은 영장 기각에 반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매번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며 “소송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 사장의 변명을 법원이 받아들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본류 아닌 별건 수사서 ‘차질’

주요 피의자에 대한 잇단 구속 실패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을 겨냥하며 롯데그룹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후 계열사와 관련한 별건 수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롯데케미칼 수사가 대표적이다. 애초 롯데케미칼은 원료 수입과정에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넣어 부당한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롯데물산의 자료제공 거부 등으로 수사에 속도가 붙지 않자 검찰은 10년 전 벌어진 ‘소송사기 혐의’ 건을 통해 허 사장 구속을 시도했다.

검찰 출신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별건 수사를 통해 핵심인물의 신병을 확보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핵심인물들을 구속하는 데 실패하면서 수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저인망식’ 별건 수사가 김수남 검찰총장 스타일과 다르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김 총장은 수사검사 시절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의사식 수사’의 달인으로 통했다”며 “지금과 같은 저인망식 롯데수사는 핵심사안인 비자금 관련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거나 김 총장 의중이 반영된 수사가 아니라는 추측도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檢 “소진세 사장 조만간 재소환”

검찰 관계자는 “사전 내사를 통해 많은 첩보나 제보를 확보하다 보니 수사방향이 분산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언론 노출이 계열사에 집중돼 있다고 해서 그룹 정책본부나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가 더딘 건 아니다”고 했다. 지난 15일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 3인방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실장(사장)이 소환조사를 받기도 했다.

소 사장 신분이 ‘참고인’이었다는 점에서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에 진전이 있다고 속단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고인 소환조사는 구체적인 혐의가 없지만, 말 그대로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을 때 이뤄진다. 조사 중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는 일도 있지만 이번 조사에선 참고인 신분이 유지됐다. 검찰이 아직 소 사장 혐의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소 사장을 다시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