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강령의 ‘노동자’ 문구 삭제를 놓고 벌어진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 논란은 2012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논란과 닮은꼴이다. 두 번 다 중심에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2012년은 한나라당 비대위 정강정책 분과위원장)가 있었다. 이번에 노동자 문구 삭제가 불발로 끝난 것처럼 2012년에도 ‘보수’라는 문구 삭제가 무위로 끝났다.

더민주는 강령 개정안에서 노동자 문구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노동자, 농어민, 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추미애 후보는 18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당 강령에서 노동자 문구를 삭제하는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며 “삭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당대회를 미리 해서 제대로 된 대선 준비를 했어야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김 대표를 겨냥했다.

앞서 김 대표는 “이념에 사로잡힌 시대의 정체성만 따지면 영원히 집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노동자 문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무슨 정체성이 그리 많으냐”며 “단어 하나 빠진 것 갖고 난리 치는 정당으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가 당내 강경파와 맞섰지만 결국 강경파에 밀려 노동자 문구 삭제는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강경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더민주의 정체성 논란은 2012년 김 대표가 한나라당(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강령 개정을 시도하다가 갈등을 빚은 것과 비슷하다. 한나라당 정책 분야를 총괄하는 비대위 정강·정책 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당 정강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빼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강한 당내 반발에 부닥쳤다. 당 안팎에서 “60년 된 보수정당의 이념을 버리는 게 상식적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당내 반발을 고려해 보수라는 단어를 삭제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지만 김 대표(당시 비대위원)는 사퇴 압박을 받는 등 코너에 몰렸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