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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동물원에서 도시의 역사를 만나다

입력 2016-08-18 17:50:12 | 수정 2016-08-19 01:01:33 | 지면정보 2016-08-19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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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기행

나디아 허 지음 / 남혜선 옮김 / 어크로스 / 408쪽 / 1만7000원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인 파리 동물원(왼쪽위)과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가 됐던 베를린 동물원(오른쪽), 대중에게 개방된 세계 최초의 동물원인 런던동물원(왼쪽 아래). 어크로스 제공기사 이미지 보기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인 파리 동물원(왼쪽위)과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가 됐던 베를린 동물원(오른쪽), 대중에게 개방된 세계 최초의 동물원인 런던동물원(왼쪽 아래). 어크로스 제공


아프리카 코끼리와 북극곰이 함께 살아가는 동물원은 묘한 공간이다. 아이들에겐 그림책에서 본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즐거움의 장이다. 어른에겐 의미가 좀 달라진다. 같은 자리를 어슬렁거리는 동물 모습에 여러 생각이 오간다. ‘이 더위에 극지 서식 동물을 구경거리로 내놓다니 동물 학대가 아닌가.’ ‘초원을 질주할 맹수가 갇힌 채 무기력한 꼴이라니 씁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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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소설가 나디아 허는 《동물원 기행》에서 세계 각국의 오래된 동물원 14곳을 여행하며 동물원에 얽힌 현대사의 명암부터 인간과 동물의 적절한 거리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구경하는 공간이 아니다. 한 도시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자 과거의 기억에 비춰 오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동물원은 해외 브랜드 매장이 들어선 도심보다 그 도시의 역사적 성격을 더 잘 보존해낸다”며 “사람과 동물의 크고 작은 기억이 모두 보존된 기억 장치”라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식물원 안에 있는 부설 동물원이 그런 예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 근대사의 격변을 그대로 담고 있다. 220여년 역사를 지닌 이 동물원은 프랑스 혁명 직후 루이 14세(1638~1715)가 수집한 희귀 동물 표본을 전시하기 위해 세워졌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엔 프랑스 군이 외국에서 빼앗아온 동물을 수용했다. 이후엔 동물 안전과 관련 법규, 시민사회 권익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요람이 됐다.

청나라 황실이 조성한 중국 베이징동물원은 외교와 교류의 장으로 활용됐다. 그동안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표범, 산양, 비버 등이 평화를 위해 오갔고, 각국 정치인은 이곳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자는 “정치인들에게 동물원 방문은 온화한 이미지를 한껏 드러내는 동시에 과학 교류에 이바지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기회였다”고 말한다.

동물원은 사회의 미성숙함과 치부를 드러내기도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동물원은 2014년 병이 들지도, 사람을 해치지도 않은 수컷 기린 ‘마리우스’를 전기총으로 사살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기린과 유전자가 비슷해 근친 교배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다른 수컷 기린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죽인 것이다. 저자는 “과학과 합리를 앞세운 이 조치를 보며 일본군 731부대와 나치를 떠올렸다”고 적는다.

독일 최초의 동물원인 베를린동물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봤다. 3700여 마리의 동물 중 91마리만 살아남았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 무고한 동물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동물원은 작가 로맹 가리와 헤밍웨이, 록밴드 U2와 벨벳 언더그라운드, 화가 살바도르 달리 등 수많은 예술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독일 영화 ‘동물원역의 아이들’은 냉전 시기 서베를린 지역에 있는 베를린동물원 역이 배경이다. 동독 영토의 중앙에 놓인 서베를린에서 동독 기차가 정차하는 유일한 역이었다.

당시 베를린은 소외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은 국제화된 대도시가 됐다. 도시 인구의 30%가 터키 중동 동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민이다. 저자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현대 베를린은 1만9480여종의 동물이 1㎢ 공간을 공유하는 베를린동물원과 비슷하다”며 “베를린동물원은 내게 세상엔 전쟁도 앗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가르쳐줬다”고 말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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