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있는 게임을 놓쳤다"…미 공화 '트럼프 자멸'에 망연자실
미국 공화당 대통령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전쟁 중 장수를 바꿨다. 벌써 두 번째다. 그는 지난 6월 말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코리 루언다우스키를 경질했다. 캠프 내 불화가 이유였다. 이달 17일엔 그의 후임 폴 매너포트도 2선으로 밀어놨다. 매너포트의 친(親)푸틴 커넥션 의혹이 불거져서다.

트럼프 캠프는 오는 11월 대선을 불과 80여일 앞두고 ‘공황’ 상태다. 사령탑이 바뀌는 건 둘째 문제다.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며 당을 떠나고 있고, 희망을 건 11개 경합주에선 지지율이 줄줄이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은 10% 안팎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트럼프 캠프 인사를 만나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했다”며 “지금 전화하면 바로 다음날 보자는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트럼프는 7월 말 전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상승세였다. 지지율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제치기도 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후 약간 뒤처지긴 했지만 추격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라크 참전용사 부모와의 설전, 클린턴 후보 폭력교사성 발언, 공화당 지도부와의 갈등 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한 공화당 인사는 “트럼프만 아니었으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놓치게 됐다”고 땅을 쳤다. 민주당 8년 집권 후 선거이고 클린턴이 역대 최고 비호감이기 때문에 공화당 경선에서 웬만한 후보가 결정됐어도 이기는 선거라는 주장이다. 17명이 경선에 출마했는데 하필 ‘입방정 대마왕’ 트럼프가 당첨됐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판세를 뒤집을 기회가 남아 있긴 하다. 세 차례의 TV토론회다. 지지율에서 클린턴이 앞서고 있지만 승패에 쐐기를 박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일각에선 미국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트럼프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바닥 민심을 읽고 이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힘, ‘죽도 밥도 안 되는’ 워싱턴의 기성 정치권에 날린 경고 등은 앞으로 한국 정치인이 보고 배울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감한 감세 등 트럼프의 경제 공약도 주목된다. 저성장·저고용이란 뉴노멀 상황에 빠진 한국이 도입을 검토해볼 만한 정책이 아닐까 싶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