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과속'…부실 뇌관
올 들어 주요 은행의 개인사업자(소호) 대출이 16조원 넘게 늘며 173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이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따라 축소하고 있는 대기업 여신의 빈자리를 소호 대출로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이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를 수익성 위주로 바꾸고 있는 점도 빠른 소호 대출 증가세를 부른 요인으로 꼽힌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신한 국민 KEB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과 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173조4758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서만 16조4348억원(10.47%) 늘어난 것으로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은 7%가량 줄었다. 중소기업, 주택담보, 개인신용 등 다른 대출 증가율도 2~5%에 그쳐 소호 대출 증가세가 가장 가파르다. 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소호 대출은 임대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과 커피숍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소호 대출 특성상 사업·생활자금 구분이 불명확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며 “다음달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가장 먼저 소호 대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올 들어 개인사업자(소호)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최근의 대기업 구조조정 영향이 크다.

조선·해운을 비롯해 건설·철강·석유화학 등 취약업종에 대한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은행들은 한번 부실이 발생하면 대규모 ‘충당금 폭탄’이 떨어지는 대기업 여신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신한 국민 KEB하나 우리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대기업 여신 잔액은 6조4850억원(7.1%) 줄었다. 이 공백을 소호 대출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소호 대출은 건당 수십억원 규모로 많게는 건당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기업 여신에 비해 리스크 관리 부담이 작다.

신용대출 성격의 대기업 여신과 달리 담보대출이 대부분인 데다 대기업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은행 간 경쟁이 덜해 마진도 높다. 소호 대출은 대기업 여신이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마진이 10~20bp(1bp=0.01%포인트)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올 하반기 들어 은행들이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를 종전 영업 실적 위주에서 수익성 위주로 일부 수정한 점도 소호 대출 증가를 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은행 영업점 KPI는 총자산순이익률(ROA) 위주로 구성됐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우리·신한은행 등이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을 일부 반영하는 식으로 기존 KPI를 수정했다. 무작정 대출 실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위험도가 낮으면서 수익성이 높은 소호 대출 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신용도가 좋은 부동산 임대업자 등이 대표적이다.

올초 다른 은행보다 앞서 영업점 KPI를 수익성 위주로 수정한 KEB하나은행의 소호 대출 증가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올 하반기 들어 각 은행들이 앞다퉈 온라인 전용 소호 대출 등을 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바젤 자본규제 강화 이후 단순히 자산 규모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영업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소호 대출이 사실상 생활 자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경기 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 빠르게 부실화할 우려가 있어 지나친 쏠림 현상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