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민생국회의 '골든타임'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대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이정현 대표의 당선으로 입지가 좁아진 그는 전국 민생투어를 통해 ‘동서화합’ ‘개헌’ 등 대권주자로서 이미지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는 12월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행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이번엔 ‘잠룡(潛龍·잠재적 대선주자)’ 꼬리표를 떼고 등판을 준비 중이다.

야권에서는 예비경선의 막이 올랐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은 내년 12월 대선에 맞춰져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권 도전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식물국회' 전철 밟는 20대 국회

개원 80일째를 맞은 20대 국회의 초반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예상 밖의 빠른 원구성 합의로 기세좋게 출발했지만 19대 ‘식물국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 위축과 실업난 해소를 위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제안한 추가경정예산은 3당 3색(色)의 요구들이 협상 테이블에 비집고 올라오면서 표류하고 있다. 추경 투입의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는 자성이 흘러 나온다. 19대에 폐기됐다가 재발의된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법은 신속 처리할 의지는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이들 법안을 한 번도 협상 의제로 삼지 않았다. ‘외교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공언도 말짱 헛말임이 증명됐다.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관련 여야 공방은 모든 이슈를 정쟁으로 끌고 가고야 마는 한국 정당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야당의 한 의원은 사드 배치 논란이 불거졌을 때 “국익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사드 배치가 달가웠겠느냐”며 “결단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정부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재집권 ‘카드’로 밀어붙였을 것이고, 한·미 우호관계의 지속성이란 측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일부 신중론은 야당 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혔고, 사드 배치는 순식간에 소모적 정쟁거리로 전락했다. 사드 배치의 당론 반대에 유보적이던 더민주 지도부까지 ‘전략적 모호성’이란 이유로 집중 공격의 타깃이 됐다.

'블랙홀' 대선정국 전에 현안 처리해야

새누리당에 이어 이달 말 더민주가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교체하면 대선을 향한 이슈 선점 경쟁이 불붙을 것이다. 임기 말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지도력 공백 현상)과 맞물려 승자독식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하면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더민주는 대선을 겨냥해 법인세 및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등 해묵은 ‘부자 증세’ 카드를 선제적으로 꺼내 들었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48.1%(2014년 기준)에 달하는 심각한 조세 왜곡 현상은 건드릴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앞으로도 여야의 정책 방향은 민생 현안을 비켜간 채 내년 대선의 표심 향배에만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노동 4법과 경제활성화법 등 산적한 민생 현안은 ‘블랙홀’ 대선 정국에서 추진동력을 잃고 폐기 수순을 밟거나 차기 정권으로 떠넘겨질 게 뻔하다. 20대 민생국회의 ‘골든타임’은 얼마남지 않았다.

손성태 정치부 차장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