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기의 회계사
‘사 자 돌림’ 직업은 안정성의 상징이었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한의사 등 시험에만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된다고 해서 부모들은 자식에게 최면을 걸듯 자격증을 딸 것을 요구해왔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꼭 판·검사가 돼야 해!”

회계사도 당당히 이 대열에 속해 있던 직업이다. 사시 행시 외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고시로, 매년 합격생 숫자가 그 대학 상경대의 경쟁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건 ‘20세기’ 얘기다. 올초 치러진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응시자는 9246명이었다. 1999년(1만5000명)에 비해 오히려 40%가 줄었다. 한때 30 대 1이 넘던 경쟁률도 최근에는 6 대 1 이하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대우가 나빠져서다. 올초 연세대가 연봉 3300만원을 제시하며 회계사 2명을 뽑았는데, 무려 70여명이 몰렸다. 일부 회계법인은 신입 회계사를 인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계약직으로 뽑기도 한다. 공직에서 5급으로 우대하던 건 옛 얘기고 요즘은 7급 대우로 회계사를 채용한다.

대우가 나빠진 데는 회계업무가 전산화된 탓이 크다. 각 부서 경리사원들이 평소 회계시스템에 입력한 내용이 사실상 그대로 재무제표가 된다. 한 달에 몇만원씩만 내도 회계프로그램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회계 전문가가 끼어들 영역이 좁아졌다. 한 대기업 사장은 “사내에서 회계 장부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고참 임원 몇 명뿐”이라며 “회계사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여기다 부실감사가 문제되면 회계법인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직업 리스크가 커진 것도 회계사 위상 추락의 요인이다. 엊그제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회계법인인 PwC가 부실 감사로 휘말린 손해배상 소송규모가 무려 55억달러(약 6조750억원)에 이른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대우조선 관련 부실 감사 때문에 회계법인이 투자손실을 입은 주주들로부터 손배소를 당했다. 특히 민·형사상 책임까지 묻는 경우가 많아 회계사라는 전문직이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이란 없다. 회계사뿐 아니라 모든 ‘사 자 돌림’이 위기다. 경영진단이나 특허 세무 등 시장을 놓고 회계사를 비롯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등이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을 벌여야 할 정도다. 의사도 앞으로는 진단 및 수술 정확도를 놓고 인공지능(AI) 로봇의사와 경쟁해야 한다. 이제는 ‘사 자 돌림’이 ‘죽을 사(死)자 돌림’이 됐다는 때이른 자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하기야 이 광속의 시대에 안정적인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