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유영국 '산'
한국 화단의 1세대 모더니스트이던 유영국 화백(1916~2002)은 일제시대의 모방 미학을 뛰어넘어 해방 이후 한국 추상미술의 ‘아젠다’를 세운 선구자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1935년 도쿄문화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강고한 ‘벽’을 뚫고 1950년대 한국의 새로운 미학 세계를 개척했다.

유 화백의 화풍은 처음부터 끝까지 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산의 화가’로 불릴 정도로 평생 우리 고유의 넉넉한 산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주위에 온통 산뿐인 고향 경북 울진의 풍경을 모태로 1955년 ‘산이 있는 그림’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자연의 복합적인 조형요소를 단일화하는 데 집중했다.

1989년에 완성한 이 그림 역시 고향에서 보던 산을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옮긴 작품이다. 빨강 노랑 녹색의 대비, 기하학적 구성이 특징이다. 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내부에 숨어 있는 자연의 근원을 표현했다. 산의 이미지들이 서로 강렬한 색감으로 조응하며 화음을 변주하는 듯하다. 구도와 색감이 원만하고 막힌 데가 없어 숭고미까지 느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