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로즈 '금빛 퍼트'…골프 '112년 긴잠' 깨우다
꿈을 이루는 길은 단 50㎝에 불과했다. 저스틴 로즈(36·영국·사진)는 연습 퍼팅을 한 뒤 침착하게 공을 홀컵으로 밀어넣었다. 버디를 확인한 로즈가 하늘 높이 주먹을 치켜들자 그린을 에워싼 1만5000여명의 갤러리가 우레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골프에서 첫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로즈는 시상식이 끝난 뒤 눈물을 글썽이며 “오랜 꿈이 이뤄졌다. 메달만 따도 엄청난 일이라 생각했는데, 금메달까지 따게 돼 믿을 수 없다”며 감격해했다. 로즈는 시상식대로 걸어가며 아내 케이트와 긴 포옹을 나눴다.

◆‘해풍’ 이겨낸 로즈 금빛 퍼트

저스틴 로즈는 14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다치주카 올림픽 골프코스(파71·7128야드)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골프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버디 6개, 보기 2개로 4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68타를 친 로즈는 막판까지 매치플레이를 방불케 하는 경합을 펼친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을 2타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로즈는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올림픽 골프 경기를 제패한 챈들러 이건(미국) 이후 첫 금메달리스트로 골프사에 이름을 새겼다. 당시 올림픽은 남자 단체전과 개인전만 열렸다.

1라운드를 4언더파 공동 4위로 시작한 로즈는 2라운드에서도 순위를 유지한 뒤 3라운드에서 이글 두 개를 포함해 6타를 줄여내며 선두에 올라섰고, 이를 끝까지 지켜냈다. 나흘 내내 방향을 바꿔가며 분 초속 6~7m의 강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빛을 발했다. 로즈는 2013년 미국프로골프(PGA) 메이저대회 US오픈을 포함해 PGA 통산 7승을 올린 강자다.

스텐손은 17번홀까지 로즈와 같은 17언더파로 금메달을 목전에 뒀다. 하지만 18번홀에서 3퍼트를 하는 바람에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동메달은 미국의 맷 쿠차가 차지했다. 쿠차는 이날만 8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러 순위를 4계단 끌어올렸다.

◆예상 밖 인기에 퇴출론 잠잠해지나

안병훈(25·CJ)과 왕정훈(21) 등 ‘코리안 브러더스’도 이날 각각 3타와 4타를 줄이며 분전했다. 하지만 3라운드까지 최대 9타까지 벌어졌던 격차를 뒤집고 메달권에 진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최종합계 6언더파 공동 11위에 이름을 올린 안병훈은 “라운드 초반에 타수를 많이 줄여놓지 못한 게 아쉽다”며 “좋은 경험이었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 다시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병훈은 5번홀(파5) 2온 2퍼트 이글에 이어 마지막 18번홀(파5)에서도 그림 같은 30m짜리 칩인 이글을 꽂아넣어 갤러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왕정훈은 더블보기와 보기를 한 개씩 내줬지만 버디를 7개나 뽑아냈다. 그는 “칠 만하니까 대회가 끝나 있었다”고 말했다. 왕정훈은 최종합계 2오버파 43위로 첫 올림픽을 마감했다.

올림픽 남자 골프는 제이슨 데이(호주), 조던 스피스(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더스틴 존슨(미국) 등 세계랭킹 1~4위가 모두 출전을 포기한 탓에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식 종목에 복귀한 지도 얼마 안 돼 올림픽 퇴출론까지 불거졌다. 1라운드에서도 갤러리가 거의 없어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만 치르고 다시 사라질 것이란 비관론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3라운드 티켓 1만장, 결승전 티켓 1만2000장이 모두 팔리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미국과 영국, 호주, 스웨덴 출신 등 각국의 골프 스타들이 메달권에 진입하자 국가별 응원 대항전이 펼쳐진 것도 예상 밖 흥행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