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맞아 보수 성향 학자와 단체들을 중심으로 건국절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45년 8월15일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지 3년 후인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된 날이다.
연례행사 된 '광복절 vs 건국절' 공방
정부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올해까지 4년째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보수 시민단체에 예산을 지원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진보 성향 학자 및 단체들은 “건국절 제정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14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건국절 제정 사업을 추진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대한민국사랑회와 대한민국건국회는 올해 5100만원가량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행자부는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1561개 비영리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공모해 매년 200여개 단체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건국절 제정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는 민간단체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부터 4년째 보조금을 받았다. 특정 단체가 4년 연속 정부 보조금을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이다.

정부는 건국절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건국절 제정을 염두에 두고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자부 관계자는 “정치적 성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민간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지원 대상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건국절 논란은 정부 수립 60주년이던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본격화됐다. 뉴라이트 계열 보수 지식인들도 동참했다. 같은 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광복절 행사 이름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하려다 광복회, 임정기념사업회 등 광복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취소했다.

건국절 논란은 2008년부터 9년째 매년 광복절을 앞두고 불거지고 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지난 12일 건국절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출범한 1948년 8월15일이야말로 진정한 건국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06년부터 건국절 제정을 주장한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건국 가운데 중요한 것은 후자”라며 “대한민국은 대부분 국가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학자 및 단체들은 보수 단체의 건국절 제정 요구가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헌법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1948년 8월15일엔 나라를 세운 게 아니라 정부를 수립한 것”이라며 “1948년 정부 수립을 선포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건국’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달 12일 박 대통령 초청으로 열린 독립유공자 오찬에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이 “건국절 제정은 헌법에 위배되고 역사 왜곡이며 역사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건국절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