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정글의 법칙'서 살아남은 장혜진…'신궁 코리아' 계보 이었다
장혜진(29·LH)의 별명은 ‘짱콩’이다. 아담한 키(158㎝)에 양궁 실력 짱, 예쁜 얼굴 짱이라며 친구들이 붙여줬다. 땅콩 가운데 짱이 되라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늘 2%가 부족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활을 처음 잡았지만 태극마크는 대학교 4학년 때 달았다. 세계대회 금메달을 딴 것도 27세나 돼서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는 1점 차 4위로 탈락해 런던행을 코앞에 두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 2관왕 명중 > 장혜진이 1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다. 연합뉴스
< 2관왕 명중 > 장혜진이 1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다. 연합뉴스
◆신궁 계보 이은 얼짱 ‘짱콩’

그가 진짜 짱콩이 됐다. 12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여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그는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우승했다. 준결승에서 4년 전 런던올림픽 2관왕인 기보배(28·광주시청)를 따돌린 뒤 결승에서 리자 운루흐(독일)를 6-2로 제압했다. 만년 후보에서 신궁으로 등극한 그는 금메달 확정 순간에 이어 시상식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런던올림픽 선발전 4등 선수라는 꼬리표도 떼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애국가를 들으니까 울컥 눈물이 났다”고 했다. 힘들었던 대표 선발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지난해 리우에서 먼저 열린 프레올림픽 때의 설움이 컸다. 장혜진은 당시 4등으로 3명의 대표 선수와 리우에 왔다. 시합에는 나서지 못했다. 홀로 연습장 한편에서 ‘도둑훈련’을 했다. 장혜진은 “꼭 저 사선에 서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한국팀 첫 2관왕에 오른 장혜진은 신궁 계보를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국 여자양궁은 1984년 단체전이 없던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서 서향순이 금메달을 딴 이후 김수녕(1988 서울올림픽)-조윤정(1992 바르셀로나)-김경욱(1996 애틀랜타)-윤미진(2000 시드니)-박성현(2004 아테네)-기보배(2012 런던)’에 이어 장혜진까지 32년간 7명의 2관왕을 배출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인전에선 홈팀 텃세에 밀려 은메달에 그친 게 딱 한 번이다. 하지만 단체전만큼은 한 번도 시상식 맨 윗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올림픽 특정 종목에서 한 국가가 8연패 이상을 달성한 것은 세 번째다. 미국이 남자 수영 400m 혼계영에서 13연패를 달성했고, 케냐가 남자 3000m 장애물에서 8연패했다.
< 女양궁 개인전 금메달 ‘거룩한 계보’ > ‘짱콩’ 장혜진이 12일(한국시간) 2016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여자양궁은 지존 자리를 지켰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지금까지 9번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양궁은 개인전 금메달 8개를 쓸어담았다. 단 한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만 놓쳤을 뿐이다. 역대 여자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를 한자리에 모았다. 위쪽 왼쪽부터 서향순 김수녕 조윤정 김경욱 윤미진 박성현 기보배 장혜진. 연합뉴스
< 女양궁 개인전 금메달 ‘거룩한 계보’ > ‘짱콩’ 장혜진이 12일(한국시간) 2016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여자양궁은 지존 자리를 지켰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지금까지 9번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양궁은 개인전 금메달 8개를 쓸어담았다. 단 한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만 놓쳤을 뿐이다. 역대 여자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를 한자리에 모았다. 위쪽 왼쪽부터 서향순 김수녕 조윤정 김경욱 윤미진 박성현 기보배 장혜진. 연합뉴스
◆시스템이 키워낸 절대강자 한국 양궁

한국 양궁이 연일 신화를 써내려가자 외신 기자들은 현지에서 한국인만 보면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물으며 신기해했다. 공동묘지와 해병캠프, 번지점프 등으로 담력 훈련을 한다거나 시끄러운 돔구장에서 소음에 맞서 활을 쏘는 집중력 훈련을 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한 호주 기자는 “뱀을 팔에 감고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맞느냐”고 묻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 양궁이 절대강자가 된 비결에는 선천적 재능보다 엄청난 연습량이 기본적으로 꼽힌다. 남자양궁 단체전 첫날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김우진(24·청주시청)은 “하루 600발을 쏜다”고 말해 외신 기자들이 “어메이징(amazing)!”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가장 큰 힘은 시스템이다. 협회와 선수, 첨단 훈련기법, 기업의 후원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우선 공정하고 혹독한 선발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협회는 900여명의 선수를 공평하게 후원한다. 이들 중 대표선발전에 출전할 만한 100여명을 추려 8개월간의 선발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 선수들이 과녁을 오가는 거리만 180㎞가 넘는다. 한 사람이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 쏘는 활이 4055발이다. 이렇게 4명을 추려 1명을 최종 탈락시키는 ‘오디션형’ 선발제도를 운영한다. 학연 지연 혈연이 개입할 수 없는 3무(無) 선발 시스템도 견고하다. 문형철 양궁 대표팀 총감독은 “오로지 실력 하나로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양궁계”라고 말했다.

절대강자를 지키기 위해 첨단과학도 동원됐다. 장비 품질을 측정하는 비파괴검사 장비와 슈팅머신, 한국형 그립, 경기장의 바람과 소음 등을 그대로 재현한 시뮬레이션 훈련 소프트웨어 등을 자체 개발했다. 집중력을 기를 수 있도록 뇌파검사, 심리치료 등도 병행했다. 기업의 후원도 한몫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985년부터 양궁 육성을 위해 지원한 투자 규모가 450억원을 넘는다.

리우데자네이루=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