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통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경제학적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 가치 하락을 위해 단행한 금리 인하가 예상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12일 보도했다. 뉴질랜드 일본 인도네시아 러시아 헝가리 한국 대만 등이 대표적 사례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포인트 낮춰 사상 최저인 연 2%로 인하했다. 하지만 뉴질랜드달러 가치는 오히려 발표 5분 만에 1.5% 급등했다. 일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았다. 올해 초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연초 대비 엔화 가치는 15% 이상 올랐다. 한국도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내렸지만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아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원화 가치 상승).

금리 인하가 예상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마이너스 금리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세계 국채 가운데 3분의 1 정도(약 11조4000억달러 규모)의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반면 인도네시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3.2%, 러시아는 연 8.3%, 헝가리는 2.8%에 이른다. 한국과 대만도 각각 연 1.4%와 연 0.7%다. 제임스 궉 아문디자산운용 외환부문 대표는 “마이너스 금리 탓에 채권을 사면 손해보는 상황이어서 투자자들 사이에 플러스 금리면 무엇이든 사려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국채를 사려는 해외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돼 해당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으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져 기축통화 가운데 하나인 엔화 가치가 상승했다. 윌리엄 데 빌더 BNP파리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교과서에 쓰인 통화정책 공식이 깨진 것은 아니지만 유효성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