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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응보의 시간간격

입력 2016-08-09 19:10:11 | 수정 2016-08-10 04:16:20 | 지면정보 2016-08-10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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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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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소설이 있다. 거기에서 스무 살 청년 주인공은 더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에 매료돼 자신의 용모는 그 초상화처럼 계속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대신 초상화 속 인물이 나이 먹기를 바란다. 소원이 이뤄지자 그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가지고 쾌락을 좇아 온갖 방탕한 짓을 한다. 반면 그의 초상화는 그가 방탕하고 옳지 않은 짓을 할 때마다 흉측하고 사악하게 늙어간다. 이렇게 18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주인공은 문득 자신의 내면이 초상화처럼 더럽혀지고 부패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초상화를 칼로 찌른다. 하인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초상화는 원래처럼 아름다움과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바닥에 쓰러진 주인공은 야위고 주름진 흉악한 얼굴이 돼 있었다.

이 소설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응보(應報)의 시간 간격이다. 주인공은 온갖 방탕한 짓을 했음에도 전혀 늙지 않고 아름다움과 젊음을 보전하다가 초상화를 찢는 순간 한꺼번에 그 대가를 치른다. 만일 주인공이 하나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바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 그만큼 얼굴이 상하게 됐다면 그는 추가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응보가 지연됨으로 인해 그는 마음 놓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죄를 저질렀을 때 바로 즉각적인 처벌이나 제재를 받는다면 보통 더 이상의 죄를 짓는 것을 자제하게 된다. 하지만 즉각적인 처벌이 없으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것처럼 사람은 계속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러면 결국 그는 그에 상응해 훨씬 큰 처벌을 받게 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

최근에 나타난 여러 비리사건도 처음에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탈세도 처음에는 소규모로 이뤄지다가 발각되지 않자 점점 규모를 키웠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을 피할 수 없듯이 살아가면서 잘못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우 그것이 고의이건 실수이건 간에 바로 그에 상응하는 응보가 이뤄져야 거기에서 헤어날 수 있다. 최소한 종교적 고해성사에 해당하는 절차라도 이뤄져야 잘못이 정화될 수 있다. 길을 갈 때 방향이 조금 틀어지면 그때마다 이를 바로 교정해야 수월하지, 먼 길을 간 후에야 방향을 바로잡으려면 매우 힘들다. 속도보다 방향이고, 이를 위해선 즉시적인 응보가 최선이다.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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