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일본 등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체제가 소비 촉진이 아니라 되레 저축을 늘리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계·기업 등이 현재 경제상황을 ‘마이너스 금리 체제라는 전례 없는 시도를 해야 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위기’로 인식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돈을 쌓아두고 싶어하는 경향이 커진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의 역풍] 소비 늘리려던 독일·일본 '극약처방'이 경기 불안심리 더 키웠다
◆가계·기업 저축률 되레 상승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일본 독일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등의 가계저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독일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금액은 9.7%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10.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랫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한 데다 지난 2월 일부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 제도를 도입한 일본도 저축률이 오름세다. 지난 1분기 가계의 현금 및 저축은 전년 동기보다 1.3% 늘었다. 비(非)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마이너스 금리 국가인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에서도 가계저축률이 OECD가 통계를 작성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마이너스 금리 경제권 기업도 투자하기보다 현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 집계에 따르면 1분기 비금융계 일본기업의 현금·저축은 전년 동기 대비 8.4% 늘었다. 1990년대 이후 가장 상승폭이 컸다. 무디스 신용평가 서비스를 받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비금융계 기업 매출 대비 현금 보유액 비중은 2014년 13%에서 지난해 15%로 뛰었다.

◆“위기 신호로 여겨져”

마이너스 금리 체제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일반인이 마이너스 금리 적용을 받을 일은 많지 않다. 일반 가계·기업의 예금이나 대출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예치금)에 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도이치뱅크 같은 시중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에 돈을 맡길 때는 연 -0.4%의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가 적용돼 시간이 지날수록 원금이 감소한다. 반면 독일 국민이 도이치뱅크에 돈을 맡기면 연 0.01~0.1%(7월 기준) 이자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금리 경제권의 가계·기업들이 일반적인 저금리 상황과 반대로 지갑을 닫으려 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비전통적 통화정책까지 써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스웨덴 은행 SEB의 칼 해머 수석통화전략 담당자는 “마이너스 금리가 소비자에게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돈풀기 효과 제약

한국은 아직 마이너스 금리 체제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주체의 심리가 금리인하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로 낮췄다.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 연 2.4%(7월 기준)를 뺀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통화 완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 투자 회복세는 여전히 느려 올 2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0.6%)은 3분기째 1%를 넘지 못했다. 한은은 가계나 기업이 저금리에도 돈 쓰는 데 소극적인 원인으로 고령화와 노후준비 부족,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 등을 들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말 국회 강연에서 “성장과 물가 등 실물경제에 대한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제약되고 있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이상은/김유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