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관련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한국경제신문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지인의 업체에 부당하게 투자를 종용했으며 측근을 고문으로 앉혔다는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일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강 전 행장은 7일 오후 법조 출입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청탁이나 압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저녁 늦게, 그는 기자와 통화했다. 소주를 한 잔 했다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비교적 논리 정연하게 청탁이나 압력과 무관함을 강조했던 이메일에 비해 좀 더 거칠고 솔직했다. “뇌물이라고는 10원 한 장 받아본 적이 없다”며 “청와대를 업고 있는 남상태(전 대우조선해양 사장)가 슈퍼갑이었고 그걸 자른 사람이 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법적으로는 궁색한 처지임을 답답해 하는 듯이 보였다. 구속될 각오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이 없으며 대우조선과 남상태 전 사장이 단순한 자회사 이상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특수한 관계(갑을관계의 역전)를 설명하려 하는 듯 했다. 그와의 통화 내용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적는다.

▶심경이 어떤가.

“나는 뇌물 10원도 받은 것이 없다. 사즉생이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다. 압수수색에서 파렴치범으로 인격살인을 당하고, 검찰의 피의사실 유출로 부관참시를 하고 있다. 검찰이 국민이 준 수사권·기소권을 이렇게 남용하고 있다. 주인(국민)이 머슴(검찰)에게 당하는 격이다. 민주 국가에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는, 이런 후진국이 있는가.

내가 더 잃을 것이 없다. 명예도 이제 다 잃었고, 재산도 없다. 정말로 민주국가에서, 뇌물 10원도 받지 않고 공직에 있었는데. 거대한 검찰 조직에 맞서겠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길 수 있다. 검찰의 임무는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설령 내가 희생이 되더라도, 포토라인에 서서, 당당히 말하겠다.

나는 죽기를 각오했다. 잃을 것도 없고 돈도 없다. 대의를 위해서, 민주국가를 위해서…. 이미 죽었고, 빼앗길 재산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검찰은 어떻게 설명하던가.

“검찰이 몰아붙이는데, 검찰은 나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으로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검찰은 나를 구속할 것이다. 감옥에 간다면, 내가 71세인데, 10년 끝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죽어서 끝날 수도 있다.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나를 포토라인에 세우라고 하겠다. 명예는 이미 끝났고,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평생 공직생활을 하면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검찰에 맞서겠다. 내가 죽어서 대한민국 새로운 길로 간다면.

묵시적인 청탁이라는 것으로, (내가) 갑이고 (남 전 사장이) 을이라고 (검찰이 엮는다). 그렇지만 슈퍼갑이 남상태였다. 청와대를 업고 있는 게 남상태였고. 그걸 자른 사람이 난데. 정말로…. 검찰은 내가 갑이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압수수색 과정은 어땠나.

“압수수색을 당한 날이 내 71세 생일인 날이었다. 생일인 줄도 처음엔 몰랐으나. 압수수색을 할 때도 쓱 (영장을) 보여주고 압수수색을 하더라고. 영장을 봐야지. 봅시다 했더니 세 가지 죄목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보면 안 된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냐, 국민으로 방어권을 가져야지, 했더니 ‘간단히만 하세요’라고 하기에 죄목을 옮겨적었다. 독재정권이나 왕조시대도 아니고, 내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압수수색을 당해야 하나. 내 방어권을 보호할 수가 없다. 서류, 컴퓨터, 수첩, 휴대폰 다 뺏긴 상태에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없고 연락처가 없어 사람들과도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복사를 해 갈 수도 있는데.

압수수색 당한 물건을 돌려주기 전엔 검찰에 출두할 수 없다고 했다. 롯데도 휴대폰을 모두 압수수색해서 영업이 진행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럴 수가 있나. 누구는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나를 죽이는 일을 하고, 나는 최소한의 방어도 못 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안 맞는다.

검찰이 나를 구속하겠다는 뜻을 알고 있다. 지금 법으로는 다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한편 강 전 행장은 앞서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그는 지인들이 대주주로 있는 바이오업체 B사 지원을 대우조선에 강요했다는 의혹에 “(이 회사가 연구개발한) 바이오에탄올은 정부가 지원하는 핵심 신성장동력으로 선정됐고 대우조선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지원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나 강압은 없었다”고 했다.

측근 일곱 명을 대우조선 고문으로 채용했다는 의혹도 “단 한 명의 측근도 채용하도록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대우건설 등 관련 회사 고문들을 임기가 되면 정리했다”고 덧붙였다.

같은 종친회 소속 인척이 대표로 있는 W건설에 50억원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도 부인했다. 강 전 행장은 “산업은행 재직 시 ‘강모 W건설 대표가 대우조선 주변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해 ‘내 이름을 팔고 다니지 말라’고 호통쳤다”며 “즉시 비서실에 산업은행 관련 회사에 접촉하지 못하게 하라고 강하게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 관계자는 “본인의 주장이며 특별히 대응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이상은/박한신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