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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세계 명품백 시장의 '히든 챔피언' 시몬느 박은관 회장…'0914' 로 새로운 도전

입력 2016-08-07 19:47:57 | 수정 2016-08-07 22:47:22 | 지면정보 2016-08-08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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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ODM은 남의 초상화 그리는 것…이젠 '명품 자화상' 그릴 때"

'패션 활력 시계' 도쿄 오후 3시 반, 상하이 오전 10시, 서울 낮 12시
서울서 살아남으면 아시아 시장 제패…이젠 독자 브랜드 낼 때 됐다
0914 키워드는 '긴 여정'…돈으로 못사는 시간의 가치 추구
경영자는 직원들의 지갑·머리·가슴 채워주는 사람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시몬느가 원하는 인재”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시몬느가 원하는 인재”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시몬느는 핸드백 제조부문 세계 1위 회사다. 핸드백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DKNY 등 미국 명품 핸드백 상당수를 시몬느가 제작한다. 이 정도 규모 기업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한두 번의 고비를 맞는 게 일반적이다. 시몬느는 다르다. ‘반전 스토리’가 없다. 박은관 회장 자신도 “1987년 창업 후 남들이 겪는 경영난이나 노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박 회장이 지난해 자신에게 무거운 숙제 하나를 던졌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100년을 가는 명품업체가 나올 때가 됐습니다. 그걸 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이것이 외국 명품 핸드백을 생산하면서 세계적 회사로 성장한 시몬느의 숙명이라고도 했다. 경기 의왕시 시몬느 사옥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한국에서 명품업체가 나올 때가 됐다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패션업계에선 ‘도쿄는 오후 3시 반, 상하이는 오전 10시, 서울은 낮 12시’라는 말을 합니다. 도쿄는 지는 도시이고, 상하이는 여전히 가능성으로 남아있고, 서울은 패션 활력이 정점에 달한 도시라는 뜻입니다. 즉 서울에서 살아남으면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얘기죠. 15년 전 도쿄가 그랬습니다. 한국의 경제와 문화 수준이 명품 브랜드가 나올 만큼 성숙했다는 것이죠. 핸드백 부문에서는 시몬느가 명품 브랜드를 내놓을 권리와 의무를 가진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0914(공구일사)’라는 독자 브랜드를 내놓은 이유입니다.”

▷회장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맞습니다. 수지 멘키스 인터내셔널 보그 편집장은 한국의 에너지와 열정, 창의성에 감동받았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오리진(뿌리)’이 나올 것 같은 냄새가 난다고도 했지요. 서울의 역동성이 무언가 새로운 명품을 만들어낼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마이클코어스 등 거래하고 있는 회사 경영자들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타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에 비유하면서 자화상을 그릴 때가 됐다고들 합니다.”

▷그럴 역량이 있다고 봅니까.

“디자인 경쟁력, 산업적 전통, 독창성 등 명품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우선 디자인 인력 수준이 높습니다. 세계 유명 디자인스쿨 기숙사에 가면 라면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로 한국 유학생이 많아요. 지금도 세계 유명 브랜드에는 한국 디자이너 서너 명 정도는 다 있습니다.”

▷산업적 전통은 무엇인가요.

“30년간 핸드백을 제조해 수출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브랜드를 달고 성공했어요. 미국 핸드백의 30%, 세계 브랜드 핸드백의 10%가 시몬느 제품입니다. 이 제품을 한국이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산업적 전통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품 기획, 소재 개발에 대한 노하우와 품질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강점인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명품업체로 발전하는 것이 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몬느 마케팅의 키워드는 ‘손의 힘, 땀의 가치’입니다.”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는 낯설게 들립니다.

“아까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도 독자 브랜드를 내놓은 순간부터는 고통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매년 2000만개의 핸드백을 수십개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각 브랜드 특성에 맞게 차별화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0914는 우리가 제조를 맡은 회사의 핸드백과 하나라도 비슷하게 내놓을 수 없습니다. 0914 제품이 모두 한정판일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이런 독창성에 대한 철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독자 브랜드를 내겠다고 할 때 파트너사들도 축하해줬습니다. 시몬느에 견본 제작하는 장인만 1200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명품이 되는 데 어느 정도 걸릴까요.

“0914의 마지막 키워드는 ‘긴 여정’입니다. 15년, 20년 정도 보고 있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동안 꽃이 만개하거나 열매 맺는 것을 보길 원하진 않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봉오리라도 봤으면 합니다. 브랜드 태동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갓 심은 소나무가 운치있을 정도로 크려면 7~8년 걸린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돈으로 시간의 무게를 사려는 만용을 저지르지 마라.’ ”

▷다른 사업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인수합병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큐베이팅은 젊은 브랜드에 투자하는 것이죠.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는 디자이너 두 명에게 투자했어요. 먼저 사업을 한 기업인의 의무이기도 하고, 사업적으로도 전망이 있습니다. 키워서 명품 브랜드에 팔거나 증시에 상장할 생각입니다. 기회가 되면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도 추진하려고 합니다. 시몬느자산운용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시몬느에 투자한 세계적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이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업종이 봉제업입니다. 그것만으로는 회사를 규정하기 부족한 듯합니다.

“시몬느는 제조자개발생산(ODM) 회사가 아니라 혁신적디자인제조(IDM:innovative design manufacturing)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DM은 패션업계에서 쓰는 새로운 용어입니다. 혁신적 디자인과 소재 개발, 상품 제조가 모두 가능한 회사를 말합니다. 핸드백에서는 시몬느, 여성 속옷 분야에선 홍콩의 레지나미라클 딱 두 곳이 그렇게 불립니다. 어떤 바이어들은 시몬느를 풀 서비스 컴퍼니 또는 플랫폼이라고도 합니다.”

▷회사 얘기도 들려주십시오. 직원들에겐 잘해주시겠죠.

“경영자는 직원의 지갑과 머리와 가슴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익공유제(PS)를 도입해 지갑을 열심히 채워주려 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진학 등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머리를 채워주는 것이죠. 가장 어려운 것은 가슴을 채워주는 겁니다. 직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옥 곳곳에 정원을 조성한 것도 그런 생각과 관련 있습니까.

“그렇죠. ‘오피스 캠퍼스’란 콘셉트로 지었습니다. 미국처럼 엄청난 녹지에 자연친화적 사무실을 마련할 형편은 안 되지만 비슷하게 지으려고 했습니다. 건물 안에 천장이 없는 실내 정원이 다섯 군데 있습니다. 언제든 테라스나 발코니로 나가 바깥 공기를 접하라는 것이죠. 신선한 공기를 쐬고, 비가 오면 비를 손으로 받아도 보고, 눈이 오면 눈을 만질 수 있는 공간을 뒀습니다. 내부에는 그림과 가구 등 각종 예술작품을 곳곳에 배치했죠. 자연과 문화, 생각이 만나는 공간으로 꾸미려고 했습니다.”

▷직원들의 전공은 주로 어떤 쪽인가요.

“디자인하는 사람이 100명 정도 되는데 문학, 사회학, 교육학 등 인문학 전공자가 많아요. 상과대 출신도 꽤 있고요. 우리는 단순히 디자이너라고 하지 않고 제품개발영업이라고 불러요. 단순히 디자인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거래처와 1년에 7000개 정도의 스타일을 개발하는데 디자이너들이 파트너가 돼 함께 제작해가는 과정을 파는 비즈니스라고 보면 됩니다. 한 브랜드와 20년간 일한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직원을 뽑을 때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까.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뽑으려고 해요. 모든 직원 면접을 직접 합니다. 한번은 면접에 밴드에서 리드싱어하는 친구가 왔어요. 기와 끼가 모두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번 와서 놀아볼래’라고 했죠. 지금 제품개발 쪽에서 일하는데 잘합니다.”

왜 0914냐고요? 아내와 다시 만난 날 기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1979년 중저가 핸드백 제조업체 청산에 입사했다. 해외영업을 하며 유능한 사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개인적 아픔이 있었다. 대학 때부터 만나던 연인과 헤어진 것. 1984년 어느 날 이별한 그 연인이 꿈에 나타났다. 다음 날 그는 함께 자주 가던 카페로 향했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낯익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헤어진 연인이었다. 비슷한 꿈을 꾸고 카페에 왔다고 했다.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그 날이 9월14일이다. 박 회장이 명품으로 육성하려는 ‘0914(공구일사)’ 브랜드 탄생의 스토리다. 그 연인이 박 회장의 부인 오인실 씨다.

박 회장은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새롭게 성장하는 미국 명품 시장을 겨냥했다. 이후 DKNY 폴로 캘빈클라인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명품브랜드 제품도 제조했다. 2015년 자체 브랜드 0914를 선보였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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