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게임회사들은 더 이상 한국 게임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차이나조이에서 만난 한 중국 게임업체 관계자는 “가격만 비싸고, 사후 대응이 늦은 데다 제품 차별화도 안되는 한국 게임에 별 관심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을 입증하듯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에서 열린 게임전시회에서 한국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한국 게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매달 신작을 찾아 한국의 판교를 방문하던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 관계자들도 올 들어 한국 시장을 거의 찾지 않고 있다. 1996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내놓은 뒤 중국과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을 휩쓸었던 한국 게임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국 게임산업 암흑기] '90년대 PC방 시대'에 멈춰선 혁신…중국 "한국 게임 살 게 없다"
◆해외 시장 놓치고, 안방마저 내줘

지난 7월 말 현재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 톱10 내에 한국 게임은 단 1개도 없다.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은 이미 2010년부터 급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산 게임이 10위 내에 이름을 올린 적은 이 기간 한 차례도 없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과마법, 뮤오리진 등 국내 앱마켓 게임 매출 10위 안에 든 게임 중 대작이라고 불릴 만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모두 중국산이다. 올 들어 국내 게임업체들이 출시한 신작 게임의 성적은 신통치 않다.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신작 10여개가 출시됐지만 넷마블의 스톤에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순위 30위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임이 전무하다.

PC온라인게임 시장도 미국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오버워치(32.33%), 중국 텐센트가 최대 주주인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24.23%), 미국 EA의 피파온라인3(6.44%) 등이 국내 PC방 점유율 63%를 장악하고 있다. 10년 전인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서든어택을 비롯해 리니지, 스페셜포스, 리니지2, 카트라이더 등 국내 게임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었다.

◆모바일 대응 늦어진 채 허둥지둥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들이 해외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온라인게임 성공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게임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가다 보니 모바일 대응이 늦었다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대신 한번 자리를 잡으면 장기간 인기를 끌 수 있다. 10년 이상 인기를 끌며 매년 1000억원 이상씩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와 서든어택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은 호흡이 빠른 게 특징이다. 작은 화면, PC보다 사양이 낮은 스마트폰에서 게임이 구동되기 때문에 개발비도 적게 들지만 그만큼 수명도 짧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게임을 출시해야 게이머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 웹젠의 온라인게임 ‘뮤’는 중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를 모바일로 전환한 모바일게임 ‘뮤오리진’을 내놓은 건 중국 게임사였다”며 “한국 업체들이 모바일 대응에 우왕좌왕하는 동안 중국 게임사들이 한국 온라인게임의 캐릭터 등 지식재산권(IP)을 가져다 모바일게임을 만들어 대박을 내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혁신’

안방마저 해외 게임업체에 내주는 이유는 ‘새로운 게임이 없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와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거 게임산업 위기가 셧다운제 등 정부의 과잉규제 탓이었다면 최근의 위기는 혁신 실종 등 게임업계 내부의 경쟁력 저하 때문이란 분석이다. 넥슨이 ‘서든어택2’를 출시하면서 전작 서든어택의 게임전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혁신’이 없는 한국 게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게임은 사용자의 외면을 받아 출시 3개월 만인 오는 9월 말 서비스가 종료될 예정이다.

모바일게임도 엇비슷한 게임만 쏟아진다. 넷마블의 모바일 액션 RPG ‘레이븐’이 지난해 3월 출시 후 5일 만에 국내 앱마켓 최고매출 1위를 차지하고, 99일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인기를 얻자 넷마블의 ‘이데아’, 넥슨의 ‘HIT’, 네시삼십삼분(4:33)의 ‘로스트킹덤’, 위메이드 ‘소울 앤 스톤’ 등 비슷한 콘셉트의 게임이 연이어 출시됐다. 이 가운데 넥슨 HIT만 매출 10위권 내에서 살아남았을 뿐 나머지는 순위권 밖으로 밀렸다.

상하이=임원기/추가영/유하늘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