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묘시장 일대 노점상들이 좌판을 깔고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한경DB
서울 동묘시장 일대 노점상들이 좌판을 깔고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한경DB
서울시가 8000여개에 이르는 불법 노점 합법화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보행권 확보와 도시미관 개선이다. 통행 불편을 초래하고 도시 미관을 저해하는 기업형 노점을 가려내 선별적으로 합법화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야권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비)에 이어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점에 합법화 길 열어줘

서울시는 시내에서 운영 중인 노점을 8000여개로 추정한다. 특정 시기나 장소를 옮겨가며 일시적으로 영업하는 노점까지 합치면 1만개를 웃돌 것이란 관측이다.

이달 초 기준으로 서울에서 노점에 도로 점용 허가를 내준 구청은 중구청과 동작구청이다. 중구청은 올해 초부터 명동에 한해 노점실명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곳에서 노점 영업을 하려면 실명을 등록해야 하며 1인당 한 개만 운영할 수 있다. 동작구는 노량진 학원가에 밀집한 ‘컵밥 노점’을 지난해 10월 사육신공원 맞은편으로 일제히 이전시켜 도로 점용 허가를 내줬다. 다만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서 운영하면 단속 대상이 된다. 이들 지역 외 서울에서 영업 중인 포장마차 및 분식노점 등 대다수 노점은 모두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 불법이다.

그러나 노점을 특정 구역으로 몰아넣는 방법은 노점의 생존권 보장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 보행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차원에서 규모를 줄이고 디자인을 개선해 노점의 거리 영업을 법적으로 허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한 사람이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노점 여러 개를 거느리는 기업형 노점은 퇴출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구상이다. 박 시장도 최근 기자와 만나 “거리 노점도 생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영업을 허가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도로 점용 허가를 받더라도 현행법상 불법인 음식노점 역시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음식노점은 비(非)음식노점과 달리 도로법뿐만 아니라 식품위생법 적용을 받는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음식업은 건축물 안에서 급수시설을 갖춰야만 영업이 가능하다.

서울시는 음식노점도 거리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정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법이 개정되지 않더라도 도로 점용 허가를 받은 음식노점은 단속 없이 영업을 허가해 주겠다는 것이 서울시 계획이다.

연간 50만원만 내면 합법 운영

서울시가 추진하는 노점 합법화가 현실화되면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거셀 전망이다. 지금도 명동 등 도심 번화가에선 자영업자와 노점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동에서 음식업에 종사하는 한 자영업자는 “우리는 임차료와 각종 세금을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하는데,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영업하는 노점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로 점용 허가를 받은 노점은 연간 50만원가량의 도로점용료만 관할구청에 내면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푸드트럭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푸드트럭을 합법 테두리 안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을 비롯한 각종 법을 바꿨다. 하지만 현행법상 명시된 푸드트럭의 까다로운 허가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노점을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면 푸드트럭 활성화는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기존 자영업자와 노점상 및 푸드트럭 종사자 간의 상생을 통해 충분히 노점 합법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노점 합법화 정책도 박 시장이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한 근로자이사제, 청년수당 등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박 시장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잇따른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