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중국 반도체업계 관계자가 매일 찾아옵니다.”

한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최고경영자(CEO)가 전한 말이다. 국가 주도 반도체 펀드를 앞세워 해외 반도체 기업을 ‘사냥’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 장비업계에도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한국 장비업체를 인수합병(M&A)하거나 합작사를 세우는 방안을 주로 논의하고 있다. 오는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반도체대전(SEDEX)에도 SMI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대규모 팀을 파견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중국은 소재, 장비,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반도체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한국 장비업체를 꼽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광기 등 주요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일본(니콘, 캐논) 네덜란드(ASML)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주요 장비는 대부분 외국산을 쓰고 있다. 한국 장비업체는 이들에 비해 규모가 작고 기술력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글로벌 장비업체들은 중국과의 기술제휴나 합작을 꺼린다. 일단 각국 정부가 기술 유출을 우려해 협력을 제한한다. 업체들도 지금처럼 높은 이익률에 장비를 팔면 될 뿐 굳이 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 장비업체들은 다르다.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 회사가 대형 투자를 하는 해를 제외하고는 매출이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구매자가 적다 보니 이익률도 낮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삼성, 하이닉스의 가격 네고에 시달리느니 중국과 합작사를 만들어 중국 증시에 상장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처지에서 한국 장비업체와의 협력은 이득이다. 일단 글로벌 업체보다 기술 수준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협력에 적극적이다. 특히 삼성, 하이닉스 등과 10년 이상 거래해온 한국 장비업체의 노하우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