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향기] 특급 호텔 퓨전식도 'K푸드 스타일'
서로 다른 것을 섞어 만든 퓨전 요리는 요식업계의 일반적 흐름이다. 중식과 일식이 만나고 유럽식과 미국식이 섞이기도 한다. 최근엔 한식이 짝짓기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 원조와 정통요리만을 고집하는 특급 호텔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호텔들은 중식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식까지 한국식으로 재해석하며 ‘K푸드’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식 식재료에서 답 찾은 해비치

호텔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리는 식재료가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요리사의 능력보다 어떤 재료를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곳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제주다.

이 호텔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인 밀리우는 제주산 식재료로 요리한 제주 전통 음식을 프랑스식에 접목했다. 싱싱한 제주산 고등어에 유자향을 더해 전채요리로 선보인 초회가 대표 메뉴다. 모양도 제주 하면 떠오르는 일출 풍경을 형상화했다. 제주산 돌광어에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를 곁들인 메인 요리도 동서양식이 공존하는 음식이다. 제주 향토 음료로 쉰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쉰다리로 만든 소르베도 맛볼 수 있다.

밀리우가 퓨전 코스로 내놓은 메뉴는 ‘셰프 추천’과 ‘밀리우’ ‘해비치’ 등 총 세 가지다. 모든 코스를 소비자 취향에 따라 메뉴를 조합해 구성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해비치 코스는 8만9000원, 밀리우 코스는 10만 8000원이며 셰프 추천 코스는 13만7000원이다.

해비치 관계자는 “프랑스식 음식에 제주 향토 음식을 섞어 제주를 찾는 국내외 여행객에게 한국적 특색이 반영된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중식 추구

지난 5월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호텔에서 문을 연 중식당 ‘웨이루’는 ‘로컬 푸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내 호텔 중식당 중 드물게 담백한 산둥요리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며 중식에 한국식을 섞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신선한 식재료로 산둥요리를 만들었다. 웨이루의 대표 요리인 베이징 오리의 주재료로 지리산 덕담골에서 기른 무항생제 유황오리가 쓰인다. 25가지의 산야초와 자체 농장에서 수확한 개똥쑥도 들어간다.

더플라자호텔의 중식당인 ‘도원’은 정통 중식을 추구한다는 고집을 버렸다. 지난달 개점 40주년을 맞아 한국 고유 식재료로 퓨전 중식을 선보이며 한국형 중식당으로 거듭났다. 기름진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한 중국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담백한 한국식 조리법을 썼다. ‘약과 음식의 근원은 같다’는 뜻의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기름으로 튀기고 볶는 게 사실상 전부였던 것에서 벗어나 냉채나 구이, 찜, 조림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다. 기름기를 줄이고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했다는 게 더플라자 측의 설명이다.

서울웨스틴조선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키아 에 누보’는 건강식을 화두로 내세웠다. 기름에 튀기거나 굽지 않고 신선한 한국형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식 메뉴 중 ‘렌틸&시레기 스튜’는 이 식당이 창작한 메뉴다. 슈퍼푸드로 주목받고 있는 렌틸에 국내산 식재료인 시래기를 섞었다.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이국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동시에 친숙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수란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이 메뉴 가격은 2만3000원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