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담아낸 '원티드'…인간의 이기심 꼬집은 스릴러 드라마
좀비(zombie)의 사전적 의미는 주술로 움직이게 하는 시체다. 사회학적으로는 주체의식 없이 무기력해진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올해 첫 1000만 관객 영화로 기록될 영화 ‘부산행’의 좀비는 인간에 좀 더 가깝다. 좀비가 되기 직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퇴행한다. 생존을 위해 남을 죽게 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감없이 그려내는 과정을 통해 좀비가 되면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순간은 좀비가 인간인지, 인간이 좀비인지 판단을 보류하게 한다.

SBS 드라마 ‘원티드’(연출 박용순, 극본 한지완)에는 미디어와 자본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톱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은퇴를 선언한 당일 그의 일곱 살 아들 현우(박민수 분)가 납치된다. 범인은 “생방송 리얼리티 쇼 ‘원티드(공개수배)’를 제작해 범죄 현장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고 프로그램이 시청률 20%를 넘길 것”을 아이의 생존 조건으로 내건다.

첫 번째 미션은 범인이 지정한 자동차 트렁크 안을 확인하는 것. 그 안에서 또 다른 납치 아동을 발견한 정혜인은 그 아이가 학대받아왔음을 알게 된다. 생방송 중 가정폭력을 일삼아온 대학교수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교수는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번째 미션에서는 소아암 환자들을 임상시험에 동원한 의사가 검거되면서 공범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전히 현우의 행방과 범인의 목적은 오리무중이다.

스릴러물임을 감안해도 범죄 현장을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쇼의 등장은 파격적이다. 쇼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청률인 20% 이상을 기록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낸다. 피투성이로 살해당하거나 투신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그대로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쇼의 진행자인 정혜인이 납치당한 현우의 생존을 위해 절규하지만 극중 시청자는 어느새 이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관망한다. 방송을 본 유치원생이 친구를 포박해 벽을 보게 하는 등 모방놀이를 하고, 범인들의 팬클럽이 생긴다. 극단적 선정성이 사회에 불러온 부작용이다.

16부작인 ‘원티드’는 12회에 들어서야 범인의 존재를 드러낸다. 정혜인의 선배이자 시사다큐멘터리 책임 PD인 최준구(이문식 분)다. 그는 임신 7개월 된 아내를 대기업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잃은 피해자였다. 톱스타의 아이를 납치해 주목을 끌어 8년간 추적해온 거대 비리를 세상에 알리려 한 것이다. 지난 4일 방송된 14회에서 정혜인은 가습기 살균제 비리를 이끈 총책임자를 감금해 살균제 성분의 가스를 주입하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시청률 30%가 넘는 범죄 생중계 리얼리티 쇼의 시청자는 이제 미디어의 노예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지닌 주체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수년 전 최준구 PD에게 증언을 부탁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극중 원티드 제작팀을 찾아와 뒤늦게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원티드’는 시청률 5% 안팎의 마니아 드라마다. 마지막 2회에서라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세상,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하는 세상이 다르게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