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안이 여야 정쟁 속에 표류하고 있다. 여야는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열흘째인 4일까지 처리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추경 처리에 앞서 조선·해운 구조조정(서별관회의) 청문회,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한 연장,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을 요구하면서 여야가 잠정 합의했던 12일 본회의 처리는 물 건너 가는 분위기다. 야당이 먼저 추경을 제안해 놓고 처리해야 될 때가 되자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추경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제출한 11조원 규모 추경은 애초 야당 요구로 시작됐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6월16일 여·야·정 민생경제현안 점검회의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으로) 대량 실업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추경 편성 요건이 충분하다”며 “구조조정 후폭풍에 대비한 민생 추경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처음엔 추경에 반대했지만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는다면 추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하는 추경을 야당이 먼저 제안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오히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결정은 못 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여야 3당은 12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을 통과시킨다는 일정까지 잠정 합의했다. 추경 처리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야당이 추경 통과 전제조건을 내세우면서부터다.

더민주는 누리과정 예산만 해결되면 추경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데서 더 나아가 세월호특조위 연장,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및 검찰개혁 관련 국회 특별위원회 설치 등 전제조건을 점점 늘려갔다.

추경을 처음 제안한 국민의당도 서별관회의 청문회, 내년도 정부 예산에 누리과정 예산 포함 등을 요구하며 더민주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급기야 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검찰개혁 특위 구성 △사드대책 특위 구성 △5·18특별법 처리 공조 △세월호특조위 기한 연장 △조선·해운 구조조정 청문회 △누리과정 예산 대책 요구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청문회 △어버이연합 의혹 청문회 등 8개 사항에서 공조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거야(巨野)의 횡포’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에 맞설 마땅한 대응 수단은 없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 3당이 추경 전제조건을 내세운 것은 한마디로 야합, 정략, 반민생”이라고 비판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